검찰의 기업인 소환 수사가 물꼬를 터뜨림에 따라 재계가 아연 긴장하고
있다.

7일 동부 한일 진로 등 3개그룹이 "스타트"를 끊은데 이어 8일에는 현대
삼성 등 6개그룹 총수가 추가 소환되는등 대기업그룹 총수들의 검찰 출두가
잇달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는 것.

특히 검찰이 그동안 "6공비리 무풍지대"에 있는 것으로 관측되던 그룹까지
를 포함해 10위권 이내 주요그룹 총수들을 8일 대거 소환키로 한데 대해
"재계를 향한 사정당국의 무차별 포화가 시작된 것 아니냐"며 파장을 가늠
하기에 바쁘다.

재계는 검찰이 소환대상 기업들에 대해 <>수사편의상 무작위로 선정한
것이며 <>금액의 다과나 뇌물성 여부와 무관하고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 업체중 일부라고 공식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춰진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진의"를 탐문하느라 온종일 부산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검찰이 이렇듯 "거물급"
총수들을 줄줄이 부르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며 "일각의 관측대로
결국 적어도 30대 대기업그룹 총수들 대부분이 검찰수사의 도마대위에 직접
오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특히 "털어도 별로 먼지가 날 것 같지는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던 그룹조차 총수들이 직접 소환대상에 오르자 "도대체 검찰이
겨냥하는 과녁이 어디까지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평소 정보수집에 기민하기로 정평을 받고 있는 S그룹측도 "갑갑하다"는
반응이다.

이 그룹 비서실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비자금건의 경우는 검찰이 입을 꽉
다물고 있어 도대체 정보를 파악키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더구나 한일그룹이 이날 미국 출장중인 김중원회장대신 그룹부회장을
"대리 출두"시키려다 검찰측으로부터 "총수 본인이 아니면 안된다"며 제동이
걸린데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따라 "천상 총수가 직접 포화를 맞을 수 밖에 없게 됐다"며 검찰의
"예상질문서"를 만들어 답변에 대비하는등 준비에 바빠졌다.

더욱이 검찰의 기업수사가 급피치를 올리면서 재계는 증권시장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돌고 있는 온갖 "루머"에 또 한차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날 오전부터 증시등에서는 "다음 차례는 어느어느 그룹이라더라"는
얘기와 함께 "모그룹은 어떤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는 등 "구체적
인 혐의사실"이 거론되고 있다.

물론 해당 그룹에서는 관련 루머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해명"에
진땀을 흘리고 있지만 이미 몇몇 그룹에 관한 루머가 검찰 수사결과 "사실"
로 확인된 전례가 있어 루머진화에 역부족인 상태다.

재계에선 그러나 검찰이 잇달아 대기업총수들을 소환하며 벌이고 있는
"좌판"에 비해 처벌 강도는 높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한 관계자는 "검찰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루에 3~6개 그룹의 총수들을 소환
수사하는 것을 뒤집어 해석하면 파헤치기 식의 전면 수사가 아니라 이미
루머로 나돌고 있는 것들을 사실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것임을 시사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이 경우 특혜거래 의혹이 두드러지는 "중대 사안"이 아닌 한 사법처리는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또다른 소식통은 "현재의 페이스로 볼 때 이번주중 대부분 기업인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지은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주부터는 노전대통령
가족과 친인척등에 대한 수사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근거로 오는 13일 한국을 국빈 방문하는 강택민중국 국가주석이
현대 삼성 대우 등 상당수 대기업그룹의 공장 시찰을 계획하고 있는 점을
들면서 "해당 그룹들로 하여금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찝찝한 상황"에서
강주석을 맞도록 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재계는 또 김영삼대통령이 오는 1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APEC(아.태
경제협력체) 지도자회의에 참석차 출국키로 돼있는 것도 기업관련 수사의
조기 매듭을 예상케하는 낙관적 변수로 꼽고 있다.

정부가 김대통령의 "바깥 잔치"에 참석키 위해 "집안 단속"을 어느 정도는
매듭지어놓지 않겠느냐는 전망에서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