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시간과 조사강도는 비례하는 것일까"

기업인들에 대한 검찰의 조사시간이 짧게는 4시간도 채 안된 경우가
있는가하면 최장 이틀을 넘기기도 해 관련 기업들 사이에 그 의미에 대한
추측이 분분하다.

지금까지 가장 오랜 시간 조사를 받은 기업인은 지난 8일 검찰에 들어갔다
가 10일 오전이 돼서야 나온 동방유량의 신명수회장(55).

신회장은 노 전대통령의 사돈인데다 서울센터빌딩 등 부동산문제까지 겹쳐
애초부터 조사가 꽤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게 사실.

그렇기는 해도 무려 49시간30분이나 검찰청에서 보낸데 대해서는 다른
기업들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신회장 다음으로는 박건배 해태회장이 23시간30분을 기록했고 최원석
동아회장과 장진호 진로회장 이동찬 코오롱회장은 각각 17시간 남짓만에
검찰문을 나섰다.

이밖에 이건희 삼성회장(11시간30분) 김석원 쌍용회장(11시간) 이준용
대림회장(14시간10분) 장치혁 고합회장(12시간40분) 등도 10시간을 넘겨
밖에서 기다리는 그룹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반면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은 불과 3시간50분만에 조사를 마쳐 최단시간을
기록했고 구자경 LG회장(7시간40분) 조석래 효성회장(6시간10분) 김중원
한일회장(7시간40분)등도 비교적 단시간에 조사를 끝냈다.

그러면 조사시간이 왜 이렇게 천차만별일까.

여러가지 이유가운데 재계관계자들은 "소명자료"의 충실성여부를 첫째
요인으로 꼽고 있다.

검찰은 이번 조사에서 비자금과 관련된 소명자료를 준비해 오도록 요청
했는데 이 소명자료가 검찰이 확보한 자료와 일치할 경우 조사가 금방
끝났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길게 끌었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총수들의 건강상태도 조사시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가령 겉보기에도 건강상태가 안좋은게 확연했던 정주영현대명예회장이
단적인 예다.

재계관계자들은 총수들의 평소 "스타일"도 조사시간의 장단을 결정하는
요인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경우 이미 노 전대통령에게 돈을 준 사실을 만천하
에 공개한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 더이상 조사할게 없었으리라는 것.

또 거침없는 말솜씨로 정평이난 구자경 LG회장도 검찰의 질문에 거리낌없이
시인할 것은 시인하고 부인할 것은 부인해 일사천리로 조사가 진행됐다는게
검찰주변의 전언이다.

반면 이건희 삼성회장 같은 경우는 말수가 적은데다 자신이 직접 전달하지
않은 돈에 대해서는 관련임원에게 다시 묻느라 조사가 상당히 더디게 진행
됐다고 한다.

조사시간의 장단에는 검찰나름의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설도 돌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검사들은 상대가 고분고분하게 나오면 쉽게
조사를 끝내 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끌어 애를 먹인다"는
것.

특히 이건희회장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인들이 국산차를 타고 출두한 것과
달리 평소대로 벤츠를 타는 바람에 조사가 길어졌다는 풍문도 유포됐다.

이밖에 항간에는 일부 기업인의 경우 이번 조사에서 "노태우비자금"뿐
아니라 야당 정치인에 대한 정치자금까지 문제가 돼 조사가 길어졌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 임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