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노태우대통령의 스위스은행 계좌추적에 나서면서 과연 스위스은행
비밀계좌 존재여부와 그 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형사사건의 국제사법공조에 관한 연방법"에서 다른 나라의
요청에 따라 스위스은행에 비밀예금계좌가 있는지 여부는 물론 예금인출및
반환(예금소유권의 해당국가귀속)등에 협조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예금조회 요청은 연방 법무경찰부를 통해 접수된다.

예금조회 요청서를 받으면 먼저 접수가능성을 검토한다.

예금계좌 확인에 필요한 요건이 불충분하면 곧바로 기각한다.

요건이 충족될 경우 연방 법무경찰부는 해당은행에 이를 확인하도록 명령
한다.

해당은행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계좌존재여부에 대한 확인과 함께 예금
인출을 동결하는 한편 입출금내역을 정보요청자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이 자금이 부정부패 자금등 불법행위에 따른 자금이면 예금의
귀속권을 해당국가로 넘겨준다.

문제는 바로 사법공조의 요건에 있다.

계좌가 존재하고 불법행위와 관련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만
계좌확인이나 반환에 협조토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은 스위스은행에 비밀예금 구좌가 있는지를 조회하기 위해서는 예금주
예금구좌번호 비밀번호를 반드시 서면으로 밝혀야 하게 돼있다.

그러나 현재 검찰은 계좌번호나 소유자의 명의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자로 추측할 수 있는 일가족 21명의 명단을 보내 확인해 보겠다
는 방침이다.

이대로라면 계좌확인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당할 가능성이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다 해당자금이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입증해야
한다.

스위스연방법에는 형사소추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예금조회를 요청한
정부측에서 증빙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노씨에 대한 수사가 끝나 형사범죄로 기소되고
죄목이 정해져야만 계좌확인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만일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중간에 소송 또는 법의 효력이 중단되는 경우엔
계좌확인 요청에 응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특히 "현저히 정치적인 성격"을 띈 사안의 경우에도 협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돼있다.

또 해당범죄가 스위스법으로도 위법이어야만 가능하다.

예를들어 국내에서는 해외로 돈을 빼돌린 것 자체가 외국환관리법 위반이
되지만 스위스에서는 외국환관리와 관련된 사안은 위법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숨겨두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리 계좌번호와 명의자를
밝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노씨의 경우 검찰은 뇌물수수죄를 적용할 방침이고 뇌물수수행위는
스위스에서도 범죄행위가 된다.

그러나 뇌물인 경우엔 누가 누구로부터 뇌물을 받아 스위스의 어느 은행에
입금했다는 사실을 명기해야만 사법공조가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어 역시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이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스위스에는 연간 2천5백여건의 계좌확인과
예금반환 요청이 들어오지만 스위스정부가 확인해준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란은 호메니이정권이 들어선 이후 팔레비 전국왕의 비자금을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실패했다.

필리핀도 마르코스 전대통령의 은닉예금 55억달러를 확인해 주도록 요청
했으나 겨우 5억달러만 확인됐다.

그것도 10년이 걸렸다.

5억달러도 마르코스 본인명의로 개설된 예금이었기에 가능했는데 지난
8월에 확인을 하고도 돈의 귀속문제를 놓고 필리핀 내부에서 분쟁이
빚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반환을 않고 있다.

스위스 정부가 비밀예금 게좌를 확인하고 돈을 돌려주는데 그만큼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노씨가 스스로 스위스은행의 비밀계좌 존재여부를 자백하지 않는한
돈을 반환받는 것은 물론 계좌의 존재사실을 확인하는 데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안상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