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경제협력체(APEC)는 과연 제2의 우루과이라운드가 될 것인가.

오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APEC정상회담에서 채택될 무역.투자
자유화 "행동지침"이 국내 농수산물시장의 빗장을 또한번 열어제치는 통상
압력으로 작용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이 이번 회의에서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행동
지침의 "일반원칙"부분.

크게 1부 "무역.투자의 자유화및 원활화"와 2부 "경제.기술협력" 부분으로
나뉘는 행동지침 내용중 일반원칙은 무역.투자자유화의 이행을 위한 9개의
원칙들이 망라돼 있다.

이 가운데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일치성" <>기존 자유화조치와의
"형평성" <>비회원국에 대한 "무차별성" <>자유화조치의 "투명성"등은 문제
가 되지 않는다.

한국도 APEC의 설립이념을 존중, 이 부분에 대해서는 흔쾌히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자유화의 범위를 규정한 "포괄성"의 원칙이다.

이는 자유화대상에 모든 무역투자 장벽을 포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등은 작년 보고르선언에서 약속한대로 자유화
분야에 예외가 있어선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일본 한국 중국 대만등은 "너무 빡빡하게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양진영간 이견은 농수산물을 교역자유화 대상에 포함시키느냐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미국등 농업선진국은 무역자유화를 추진하면서 특정분야를 예외로 두면
보고르선언의 취지가 바랜다며 "절대 양보불가"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내심은 아태지역의 농수산물시장을 이번 기회에 "열린 시장"으로
만들어보자는 속셈이 깔려 있다.

거꾸로 한국 일본등 상대적으로 농업분야가 취약한 나라등은 APEC이 제2의
UR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일두나라는 내년에 총선을 앞두고 있어 "농.어민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만일 APEC이 농업분야의 빗장을 추가로 여는 계기가 될 경우 UR때와
마찬가지로 국내정치적으로 또한번의 홍역을 치를게 뻔하다.

이 때문에 한국정부는 일본 중국 대만등과 "(쌀등 국내정치적으로 민감한)
특정분야에 대해선 특별히 배려한다"는 문구를 일반원칙에 삽입하는 쪽으로
공동보조를 취해 왔다.

그러나 15일까지의 상황을 보면 한국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
이다.

우선 공동전선을 형성할 것으로 믿었던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APEC회담을
순항시키기 위해 막판에 수정안을 마련, 한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 당초 "각국의 특수성을 감안, 차별적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신축성이
부여돼야 한다"는 문구로 "포괄성 원칙"에 예외를 마련할수 있는 길을
터놓았었다.

그러나 결국 "각국의 다양성을 배려, 자유화의 속도와 과정을 유연히
한다"는 수정안을 제출, "방어강도"를 상당히 누그려뜨렸다.

현재 수정안통과를 위한 일본정부의 노력은 상당한 약효를 발휘, 일본
언론들은 17개국이 찬동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14일 개최한 APEC관계장관회의에서 일본측 수정안을
수용할수 없다는 최종입장을 결정,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농업분야의 자유화 포함여부에 대한 최종결정은 16~17일의 각료회담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각료회담에서 최종결론이 날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수정안 수용여부
가 이번 APEC회담의 화두가 될 전망이다.

한편 느슨한 형태의 경제협력체로 출발한 APEC이 점차 통상압력의 장소로
성격이 바뀌는 경향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APEC의 장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APEC이 "협력의 장"에서 "협상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게다가 <>"개방적 지역주의"라는 APEC 설립이념의 "모호성"문제가 점차
표면화되고 있고 <>각국마다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 역시 만만치
않아 이번 오사카 APEC회담은 앞으로 APEC의 성격과 운명을 가늠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오사카=김정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