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노태우전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의 국회폭로로 부터
흐른 한달이란 기간이 길게 느껴졌느냐 짧게 느껴졌느냐는 각기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겠다.

일반 국민으로선 경악 분노가 치민 끝에 지도자 자칭자들 끼리 벌이는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는 흙탕물 싸움에 질력이 나, 딱부러진 결말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져 왔을 것이다.

어제 기어코 전직 대통령 노태우씨가 구치소에 이감되어 가는 TV화면을
대하는 순간 국민들의 마음은 엇갈렸다.

더 고초를 당해야 싸다는 성 안풀린 쪽에서,그만하면 됐다는 쪽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면서 깊은 곳엔 한마디로 표현키 어려운 착잡함이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각자가 제위치에서 차후 여러 단계를 알차게 밟아 나간다면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발전이 있을 것이지만 이 기막힌 순간을 건성 넘기고
얼마안가 까맣게 망각하고 만다면 틀림없이 나라운명은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첫째 노씨부부나 측근들은 남이 다 하던 짓을 왜 나만 가지고 법석이냐고
계속 억울해 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혹시 앞으로 최대한 발을 빼며 재산은 최대한 건지자는 욕심을 못 버린다면
더 큰 불행이 기다리며 일시적 실수였다고 동정을 살 기회마저 놓친다.

설령 통치란걸 하다보니 돈이 필요해 관례대로 충당했다손 치자.쓰고 남아
숨긴 잔액이 얼마만한 거액인줄 아직도 모른다면 천치다.

부동산투자에 350여억원을 유용했다는 사실 하나로도 세운 공 상쇄하고
중죄다.

재산부터 다 회수하라.

둘째 정치권은 여야불문, 더하고 덜한 정치인도 정당도 없다는 국민의
예리한 눈초리를 겸허히 수용해 철저한 자기혁신을 하기 바란다.

여야에 아직 손가락질 받는 전문적 정치사기꾼이 없지않은 현실에서
이들을 스스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 옹호자도 밀려날 때가 곧 온다.

지방선거 패배후 당선가능성 우선이라며 별별 인격 파산자들, 그것도
거액수회죄수를 출옥 몇달만에 대거 영입하는 작태로 숙정 운운하기
어렵다.

셋째 검찰은 비록 판사와 달리 상명하복 조직이지만 법치국가에서 정의의
화신이고 최후보루여야 한다는 보다 큰 기대에 부응,실추된 한국의 검찰상을
높이 세워야 나라가 전진한다.

넷째 경제계는 눈치로 알아차려 떡값빙자 거액을 바치는 무책임을 더이상
상습하지 말고 규칙있는 경쟁시대를 스스로 열어가야 한다.

부정으로 등수를 다투기 보다 떳떳하고 훌륭한 기업가 경제가 애국자 됨이
진정 탐할 명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국민과 대통령의 책무다.

국민의식에 공짜를 좋아하고 나만은 예외라는 구태가 벗겨지지 않는한,
정치경제 행정 언론에 청렴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정당인은 위를, 유권자는 정치인 주머니를 계속 쳐다보는 악순환에서
정.경.관의 유착과 사회부패는 끝내 나라를 망칠 것이 틀림없다.

현직대통령도 꺼림칙한 점이 있었다면 당당히 밝힌연후 장래를 논해야
"한국의 수치"라는 총체적 불명예를 좀 씻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