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이야. 여승과 여도사들이 왜 그 모양으로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어.

하긴 진종을 좋아해서 절간을 도망쳐 나와 여기까지 숨어든 지능이라는
여승도 있긴 있었지.

그런 여승들 때문에 나쁘게 소문이 나는 거겠지.

덕망 있는 자들을 골라 왔다고 하지만, 얌전한 자가 뭐로 뭘 깐다고
항상 그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되네.

풍기를 문란케 하는 자가 있으면 즉각 내어 쫓도록 하라구.

엉큼한 남정네들이 비구니 절간이나 단방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잘 하고 말이지.

특히 우리 보옥이 같은 호기심 많은 남자애들이 그런 곳을 기웃거리지
않도록 하란 말이야"

왕부인이 좀 엄한 어조로 지시를 하자 임지효의 아내는, "네, 네" 하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왕부인이 말을 쉬는 틈을 이용하여 한 가지 문제를 상의하였다.

"근데 말입니다.

머리를 깎지 않고 수업을 하는 유발 여승이 하나 있는데, 글도 잘 짓고
서예에도 능하고 경문을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학문도 깊다고
합니다.

그래 그 여승을 이번에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본인이 싫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거절한 이유가 무언데?"

왕부인이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여승 말이, 원래 왕공귀족의 가문이라는 건 거의 대부분 권세와
부귀를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기 마련이니까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문도 사람을 업신여기는 그런 귀족 가문이라 이거지"

"꼬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러지 않을까 염려하는 거지요"

"중들은 왕공귀족의 가문에서 불러주기를 은근히 바라고들 있는데
그 여승은 특이하군.

그래 그 여승은 어떤 가문 출신인가?

아니면 흔히 여승들이 그렇듯이 고아 출신인가?"

임지효의 아내는 말을 제법 길게 늘어놓을 모양으로 자세를 고쳐잡으며
입츨 열었다.

그녀가 왕부인에게 들려준 그 여승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한 여자아이가 소주 지방 학자 가문인 유식한 관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병이 잦았다.

하루는 중이 찾아와서 이 아이는 출가를 하여 절간에서 수행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 자신이 출가하기 어려우면 체신 출가라도 하도록 하였다.

체신 출가는 다른 아이를 사서 출가를 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