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전 도시가스가 폭발하고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주저앉는등
일련의 대형사고를 거치며 운좋게(?) 사고현장에서 비켜갈수 있었던 사람들
의 공통된 느낌은 죽은자들에 대한 비통한 심정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속은듯한 배신감이었다.

이번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은 다시한번 온국민을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한다.

내가 흘린 땀방울로 내가 속한 조직과 국가와 가족의 안정과 평화가 유지
되리라 믿었던 평범한 1,200만근로자들의 분노가 머무는 곳은 이 나라를
대표했던 전직 대통령의 비굴한 모습만이 아닌, 그것이 가능한 우리의
현실에 대한 분노,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나라의 구성원인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는 과거를 인정하면서 다시한번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역사적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불의에도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고,동시대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바탕으로 이 사건이 정당하게 해결될수 있도록 스스로 주체가
되어 참여할때 수치스러운 과거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
될수 있을 것이다.

노씨의 비자금은 우리들 근로자 자신에게 돌아가야할 몫의 땀흘려 번돈이
노씨개인의 부로 축적된 것으로 그돈의 주인인 근로자들은 마땅히 흘린 땀의
대가를 요구할수 있다.

근로자의 노동이 씨앗이 되고 거름이 되어 성장한 기업의 부는 근로자들
에게 재분배 되어야 건강한 소비자집단을 형성할수 있고 기업은 다시 더
많은 물자를 공급할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된다.

근로자가 주인인 노씨 비자금은 영세한 근로자들의 생활지원과 주택자금
마련등 근로자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수 있는 복지를 위해 쓰여짐으로써
마땅히 가야할 길을 뒤늦게나마 찾아가게 해야 한다.

성급한 주장일는지는 모르나 그래야만 사필귀정의 정의가 되살아나고
비자금으로 인해 받은 국민의 상처가 어느정도 치유될 것이다.

박영순 <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