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항근 < 중앙대교수.경제학 >

경제력과 지력으로 평가할때 지구상에서 최강국은 어떤 나라인가.

미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이 세계 1등국임을 주저않고 대답한다.

사실 미국인들이 보는 일본의 존재는 미미한 것이다.

구매력으로 평가한 일본의 GNP는 미국의 약 40%정도이고, 노벨상 수상자
수를 비교하여도 압도적이다.

미국식 판단기준으로 볼 때 일본의 명문 도쿄 대학은 세계 150번째 정도의
대학이며, 세계 경제학계에 미치는 일본 대학들의 영향력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사실 영어로 발간되는 변변한 경제 논문집하나 없는 실정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창의력이
없는 기계적인 사람들로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똑같은 질문을 일본인들에게 하면 완전히 다른 대답을 얻게 된다.

94년도 GNP를 기준으로 볼 때 엔화 환율이 1달러에 70엔이되면 일본의
GNP가 미국의 GNP를 능가하게 된다.

그러면 일본의 인구가 미국인구의 절반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미국인의
2배만큼 잘산다고 볼수 있게 된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후 모든 학문분야에서
안타를 기록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와 언제든지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일본인들은 자부한다.

다만 그들의 평가기준은 미국인들의 판단 기준과 상이할 뿐이다.

따라서 일본의 가장 우수한 두뇌들은 미국으로 유학가지 않는다.

중국인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라고 말한다.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보유할 뿐만 아니라 한세기 동안 잃었던
중국의 영향력을 다시 찾아 세계의 중심이 되리라는 중화사상을 거침없이
주장한다.

우리는 경제학을 개의 꼬리가 개를 흔드는 학문이라고 한다.

어떤 물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일반적으로 서로 다르므로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으로 그 물건의 전체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작년말 1달러에 100.13엔하던 것이 금년 4월 83.67엔으로 달러
가치가 떨어졌는데,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일본의 경제규모가 4개월 동안
20%나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95년 1.4분기에 0.1%의 성장을 하였을 뿐이다.

그 외에 산술적 계산의 허구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서 약 3만원하는 시바스리갈 위스키가 일본에서 100달러에 거래
된다고 하여 일본인들이 그만큼 풍요로운 소비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또한 중국이나 인도의 경우 임금이 대단히 낮아 비교역 상품들이 이들
국가내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교환된다고 하여 그들이 산술적으로
계산된 것만큼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여러 나라들의 물가차이를 감안한 구매력 평가기준에
의하여 경제력을 측정하곤 한다.

이 방법에 따라 미국의 DRI 연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93년도 각국의 국내
총산출량을 기준으로할 때 미국이 6.4조달러, 중국이 2.6조달러, 일본이
2.5조달러 순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2의 경제력 보유국이 되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전문인력들의 두뇌전쟁시대이다.

실물적 생산요소보다는 인적자본의 역할이 경제성장과 무역정쟁에서 더욱
중요한 시대가 오는 것이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 경제적으로는 준선진국으로
자부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고급 인력자본 보유측면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크게 뒤지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너무 자만하는 것같다.

지난 30년 동안 이룩한 경제성장에 도취하여 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제일의 전문가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곤 한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전문인력을 충분히 평가하거나 인정할 만큼 사회가
성숙되지 않았다.

우리에겐 최상의 품질을 만들겠다는 정공법보다는 우회적 해결방식이
우선적으로 통용되곤 하였다.

정경유착의 검은 돈 거래가 이를 단적으로 뒷받침하여 주고 있지 않는가.

중소기업자들이 돈을 벌면 정치판에 뛰어들고 학자들은 박사학위를 받으면
그날부터 쉬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기술을 복제하여 수출하던 시대는 지났다.

전문인력에 의한 우리의 고유상품을 개발하여야 국제경쟁을 할수 있고 또
우리의 고유학문을 발전시켜야 외국과 경쟁할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우리의 앞길이 그동안 예상되었던 것 보다 훨씬 험란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등산에 익숙하여 산을 힘들게 오르고 쉽게 내려오는 경험은
가졌으나 미국의 그랜드 캐년처럼 처음에 쉽게 내려가고 힘들게 올라와야
하는 역등산의 경험은 별로 없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진행된 엔고는 한국의 경제발전에 다른 어떤 요인
보다도 많은 혜택을 주었다.

우리경제가 위기를 맞을때마다 새로운 엔고가 발생하여 무역수지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최근 엔고가 주춤하고 달러당 100엔대로 후퇴하자 많은 연구소들은 내년의
경기는 후퇴할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무역은 점점 자유화되고 무역장벽은 없어져서 선진국의 1인당
GNP가 거의 같아지려고 한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물가를 기준으로 보고 구매력
평가설에 의하여 계산하면 환율은 1달러에 150엔 정도가 알맞은 수준이다.

만약 엔화가 달러당 150엔대로 가치하락이 일어나면 이것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인 결정타다.

우리에게 위기때마다 도움을 주던 엔고가 엔저로 반전할때 우리는 무엇으로
외국상품과 경쟁을 하겠는가.

오랜기간(30년에 걸쳐)공들여 쌓아온 탑이 완공을 불과 몇10분(21세기
문턱 마지막 몇년)앞두고 그대로 무너져 내릴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미국과 일본만 의식하고 살았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중국의 경제력이 분명히 우리 눈앞에 부각될 것이다.

수천년동안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받아왔던 시달림의 역사가 반복될까
걱정이다.

잠자던 사자가 한번 기상을 하면 몇백년은 활동할 것이고 그 영향력에
새로운 시련의 시대를 맞지 않도록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하여야 하겠다.

몇년전 연변 가라오케에서 달러 몇장으로 으스대던 경험은 이제 완전히
반전될 수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