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우리나라프로기사의 바둑실력은 어느 수준일까.

우리나라에서 주최하는 "동야증권배"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정"은 물론이고
일본서 주최하는 "후지쯔배", 대만서 개최되는 "흥씨배"등에서 우리 기사들
이 타이틀을 석권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실력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바둑"(BADUK)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고 "고"(GO)라고
일본말이 통하는 것은 일본이 일찍 현대바둑을 시작해 국제사회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바둑은 중국에서 문자가 생기기전인 4300여년 전에 발생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고증은 없다.

우리나라에 바둑이 전래된 시기는 중국의 요순시대에 바둑이 창안됐다면
단군과 요순은 그 연대가 비슷하므로 그 당시에 전래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우리 바둑사는 삼국시대부터 더듬어 볼 수 있다.

중국의 구당서엔 "고구려는 바둑 투호의 유희를 좋아한다"고 기록 돼
있고 후한서엔 백제서 "바둑두는 것을 숭상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광복전까지 순장바둑이라는 재래식 바둑을 두었었으나 창의성이 제한되고
기술적인 한계가 있어 광복과 함께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리나라 여성이 바둑을 두기시작한 것은 퍽 오래된 모양이다.

고려조의 문호 이규보가 평양기생 진주가 바둑의 고수라는 소식을 듣고
한판 두기를 바라는 시를 써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여류 바둑국수가 탄생한 것은 74년 3월30일
한국경제신문사가 주최한 "아마 여류 국수전"의 김상순초단이었다.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방송공사가 공동 주최한 제2회 보해컵 세계여자바둑
선수권대회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이영신초단과 중국의 펑 윈(풍운)8단이 12월18~22일에 있을 결승전에서
격돌하게 된것이다.

작년의 제1회대회에서 한국팀 8명전원이 8강에서 탈락해 버렸기 때문에
이번 대회의 목표는 4강진출에 두었다.

우리 참가 기사는 대부분 10대이다.

그들이 바둑에 전념할수 없었던 핸디 은 대학입학수능시험이 아닌가
싶다.

이영신초단은 작년에 현대고를 졸업한뒤 진학을 포기하고 바둑에 전념해
예상을 뒤엎은 성적을 올렸고 윤영선초단이 부진했던 까닭은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한다.

기사에 학력이 필요한가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그들이 기량을 마음껏
키울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