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경영자".

미캘리포니아주의 가구업체 트로피튼의 찰스 파렐회장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인력회사에서 파견된 "한시"회장이기 때문이다.

트로피튼은 고급 옥외가구로 시장점유율 17%를 유지하는 내실있는 기업
이었다.

그러나 93년들어 영업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3백만달러의 적자를 낸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창업자는 93년봄 경영간부 전문 인력회사인 임코에 회장
추천을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88년까지 한 가구업체의 부엌용품부문 사장으로 일했던 파렐
회장은 트로피튼의 진두지휘를 맡게 됐다.

파렐회장은 입사즉시 종업원 25%를 삭감하고 상품을 대폭 교체하는등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했다.

그결과 약 1년만에 적자를 1백만달러의 흑자로 전환시켰다.

파렐회장의 계약기간은 2년.

올해로 만료되지만 이미 욕실용구 업체등 다른기업 2곳과 계약된 상태이다.

임코는 파렐회장 같은 전문경영인을 약 3만명 확보, 기업의 요청에 따라
열흘이내에 최적임자를 파견하고 있다.

이회사의 존 톰슨회장은 "재편회오리가 격화되고 있는 미산업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급여계산과 정보부문에서 시작된 미국의 아웃소싱 열기는 "최고경영자"
부문을 넘어 연구.개발(R&D)까지 번지고 있다.

스탠포드대에서 독립한 비영리 연구단체 SRI인터내셔널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1천7백명의 연구자를 활용, 정보,정밀기구,의약등 다양한
분야에서 R&D를 대행해 주고 있다.

SRI는 중견의약품 업체인 듀라 파마슈티칼로부터 가루약 흡입기 개발을
의뢰받아 불과 9개월만에 개발을 마무리짓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술을 생명으로 여기는 첨단업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실리콘 밸리기업 ZF마이크로시스템에는 제조설비가 전혀 없다.

마케팅 이외의 모든 것은 아웃소싱으로 충당하고 있는 탓이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초소형 컴퓨터.중앙처리장치(CPU)를 기판에 꽂지
않고 소형 반도체부품으로 집약한 제품으로의료기기와 경비시스템등에 주로
사용된다.

이 회사가 설립된지는 불과 7개월.

종업원도 3명뿐인 초슬림 기업이다.

기술자를 고용할 시간도 없고 노무관리도 귀찮아 모든 것을 외부업체에
맡겼다.

하청을 맡은 기업은 역시 실리콘밸리 업체인 IPT코퍼레이션.

ZF 신제품의 설계에서 시제품 제작까지 모든 것을 맡아 처리한다.

ZF의 "엔지니어링부"나 다름없는 셈이다.

IPT는 ZF신제품 개발을 의뢰 맡은지 4개월만에 시제품을 완성,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IPT에서는 40명의 기계공학및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이 항상 4개 프로젝트씩
추진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기업들이 단순한 조립생산을 넘어 제품의 설계와 마케팅, R&D에 이르기
까지 과감한 아웃소싱을 단행하는 이유는 뭘까.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인 SCI의 올린킹회장은 이렇게 답한다.

"신제품 개발과 생산에는 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효율은 좋지 않다. PC의 경우 제품사이클이 4,5개월에 불과해 이기간동안
투자자금을 회수하기는 무리하다. 결국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으로 아웃소싱
을 이용하는 것이다"

미조사기관 쿠퍼스&라이브랜드(C&L)에 따르면 최근 2년동안 생산과 마케팅
등 분야에서 아웃소싱을 실시한 기업의 경우 신제품 개발이 다른 기업에
비해 23% 많았다.

외부위탁을 활용하면 신제품및 서비스 개발에 따르는 리스크를 낮출수
있는 덕분이다.

앞으로 미기업은 경영기획, 인사, 법무, 광고까지 주력분야가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아웃소싱으로 돌릴 것 같다.

JP모건의 분석가 윌리엄 라빈의 예언처럼미기업에서 간접부문이 없어지는
날도 멀지 않은 듯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