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소문안 성벽아래에는 오랫동안 세상사를 지켜봐온 느티나무
다섯그루가 있다.

이 나무들은 천주교가 박해받던 당시 뿌리를 내려 대원군과 개화파의
싸움을 지켜봤으며 일본인들이 궁안에 난입해 국모를 참살하는 모진
시간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일제 강점하에서 파란눈의 독일 수사들이 수도원과 신학교를 짓기 위해
붉은 벽돌을 나르는 모습을 지켜봤고, 한국전쟁때는 북으로 끌려가는
죄없는 사람들의 슬픈행렬을 목도해야 했다.

건축은 늘 새로움만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시간의 흔적을 지키고 아로새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할때
건축가는 그 흔적과 이야기들을 건축으로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증인의 말없는 목소리를 되살려 우리자신과
후손에게 무언의 역사를 들려주고 보여줘야 한다.

조촐한 벽돌건물이 오래된 거목을 감싸고 있는 카톨릭대학 도서관과
학사동을 아름답게 봐준 심사위원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한다.

아울러 행사를 주최한 문화체육부와 후원사인 한국경제신문사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김영섭 < 건축문화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