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옥 < 농촌경제연 연구위원 >

이번 APEC(아.태경제협의체)오사카 각료회의및 정상회의에서 농산물의
경우 무역자유화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특수성을 감안해 차별적 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신축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 최대 쟁점중의 하나였다.

이는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에서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화와 시장
개방의 원칙을 놓고 수출입국간에 벌어졌던 이견대립과 매우 유사한 상황
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는 결국 예외없는 포괄적인 시장개방의 원칙이 채택
됐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쌀은 협정문 부속서에서 특별취급돼 시장개방에서의
신축성을 확보했다.

예외없는 시장개방의 대원칙을 채택하면서도 수입국의 어려운 처지가
감안된 타협방식이었다고 볼수 있다.

이번 오사카회의에서는 무역자유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지침(Action
Agenda)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의 시장개방의지가 담긴 이행계획서
를 오는96년 필리핀에서 열리게 될 제4차 APEC정상회의때까지 제출하기로
돼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개방계획서를 작성하기전에 개방적 지역주의라고 불리는
APEC의 성격과 국내 농산물시장의 개방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시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APEC 18개 회원국들은 경제성장의 단계, 자원의 부존여건, 산업구조,
1인당 국민소득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질적인 국가들이다.

이러한 국가간의 이질성과 다양성으로 경제통합과 무역자유화에 따른 국제
분업의 효율성은 극대화될수도 있으나 무역투자자유화에 관한 논의자체가
극히 어려울 수도 있다.

두번째로 APEC가 표방하고 있는 개방적 지역주의원칙도 비회원국의 무임
승차문제가 발생해 시행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루과이라운드협상과 WTO(세계무역기구)체제의 출범으로 광범위한
통상문제에 대해 합의했거나 추가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APEC 독자적으로 더 큰폭의 개방을 약속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해
상응하는 조치를 역외국가들로부터 얻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APEC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성격이 변하고 있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89년 회원국간의 친목과 협력을 목적으로 출범한 APEC는 본격적인 무역
협상의 장으로 변모된 느낌이다.

또 최근에는 정치 외교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정치와 외교의 논리가 지나치게 가미된 경제협력과 무역확대의 논의는
무역투자자유화를 통한 자원배분의 효율화와 경제성장의 목적에 배치될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APEC의 한계와 장점을 충분히 감안하되 농업의 국가경제에
대한 진정한 역할과 의미를 재점검해 농산물시장개방의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할 것이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농산물의 예외조치를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단순히
회원국간의 협력이나 외교적인 체면을 위해 농산물시장의 개방을 유도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농업이란 식량생산과 소비의 경제적 측면과 더불어 식량안보, 환경보전,
국토의 균형발전등 여러가지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산업이다.

아울러 우리 농업은 급속한 국제화 개방화의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APEC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얻을수 있는 총체적인 국익과 농산물
시장개방에 따른 손실을 정확히 저울질해 적절한 속도와 폭으로 농산물시장
을 자유화해야할 것이다.

이번 APEC 회의에서 상이한 경제발전수준과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 민간
부문에 대해 신축적인 무역자유화의 대응이 가능토록 하였지만 농산물에
관한 협상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신축성이란 용어는 회원국의 다양한 입장을 절충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그 개념도 애매한 것이다.

농산물수출입국이 아전인수격으로 신축성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한마디로 농산물 무역자유화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96년까지 구체적인 무역투자자유화의 이행계획서를 작성 제출하는
과정에서 효율적인 협상전략의 수립과 협상추진에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APEC에서 완전자유화의 시한이 2020년으로 비교적 멀리 설정돼 있으나
관세화라는 보완장치가 마련된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과는 달리 완전
자유화가 전제돼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APEC의 농산물시장개방 문제는 아무리 신중히 다뤄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한편 합의된 시행지침의 내용중 회원국간의 경제기술협력에 관한 사항에는
농업기술데이터베이스추진 정도가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식량자급을 이루는 과정에서 농업생산기술과 정책입안에
관해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를 특정 회원국에 전수하거나 공동으로 농업개발에 힘쓸 경우 무역
자유화조치를 능가하는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개도국들과 경제협력을 수행함에 있어 농업기술협력은
매우 중요하고 향후의 논의과정에서 강조돼야할 것이다.

APEC는 여러가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개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계속
보완돼야할 경제협력체이다.

기존의 다자체제인 WTO와의 관계도 명료화될 필요가 있으며 통상과 정치
외교 안보등의 문제도 혼재해 있는 상황이다.

우리입장의 재정립과 신중한 접근이 요청된다고 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