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는 오륜의 하나요, 한몸을 쪼갠터다.

이러므로 부귀와 화복을 같이하는 것이니."

조선조의 소설 "흥부전" 첫머리에 나오는 이 사실은 작가 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그당시 일반인에게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졌던 관념이다.

"한몸을 쪼갠터이니 부귀와 행복을 같이 해야한다"는 생각은 형제나
자매 사이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다.

이 정신은 형제자매의 자식은 내자식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로 확대되고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가와 친척 전반에 확대되어 혈족윤리의
바탕이 되었다.

같은 피를 받아 같은 성과 본관을 가진 친척은 결코 남일수 없으며
그들의 일은 곧 나의 일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족제도와 효의 윤리를 떠받들어 온 것은
혈통, 즉 핏줄을 중요시 하는 혈족의 관념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아의 한계를 개인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혈족전체와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일문의 보전을 위해서 자수하라"는 방문을 써붙였던 것이나 "역적은
구족을 멸하도록 했다"는 극형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다.

구족이란 부족넷, 모족셋, 처조들을 일컫는 것으로 부족은 고모의 자녀,
자매이 자녀, 딸의 자녀, 자기와 동족을 말하는 것이고 보족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의 자녀, 처족은 장인 장모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반대역죄인은 이런 세종족을 모두 처형했다니 뒤집어보면 친척의
범위도 그만큼 넓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종족은 처음에는 한 사람에서 나누어진 것인데 지파가 비록 멀더라도
도외시해서야 될일인가.

때때로 서로 만나고,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나누며, 질환이나 혼상때도
마땅히 힘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다.

유중림의 증보 "산림경제"에 나오는 것처럼 현족은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을 지키며 오순도순 살아온 작은공동체였다.

내달 1일부터 의료보험 가입자가 부양하는 숙부 고모 이모 조카등 3촌
이내의 방계혈족과 외조부모 외손자녀도 피부양자로 인정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이다.

또 의붓부모 의붓자녀 양부모 양자녀는 의보가입자와 동거하지 않아도
사실관계만 인정되면 같은 혜택을 받게된다.

서구 가족제도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사고방식이 무너지면서 옛날보다
급격하게 혈족관념이 약화되고 효의 윤리도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구사회에 비하면 아직도 사람다운 혈족간의 상부상조 정신을
살려가려는 우리의 의지가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이들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의보의 피부양자인정기분 확대가 우리 고유의 미풍약속인 "숭조목족"에
활력을 주어 보다 안정된 복지사회기틀 마련에 기여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