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후비 원춘 누나가 과제로 내어준 네편중에서 유봉래의, 즉
소상관과 형지청분, 즉 형무원에 관한 시를 짓고 나서, 세번째인 이홍쾌록,
즉 이흥원에 관한 시를 지으려는데 잘 되지 않았다.

녹옥춘유권이라는 문구를 적고는 그것을 속으로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어떻게 퇴고를 하는 것이 좋은가 궁리하였다.

파초잎이 푸른 옥인 양 봄볕에 오그라들어 있는 모습을 읊은 것인데
아무래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보채가 옆에서 그 문구를 훔쳐보고는 보옥의 옆구리를 슬쩍 손으로
찔렀다.

보옥이 보채를 돌아보자 보채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후비께서 "홍향녹옥"이라는 편액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홍쾌록"으로
고치신 것을 알고도 녹옥이라는 말을 문장중에 사용하다니요?

일부러 후비의 심사를 거스를 작정이에요?

파초잎을 노래한 시들이 많잖아요? 그 시들을 참조해서 한 자만
고쳐봐요"

보채가 그렇게까지 말해주었으나 보옥은 무슨 자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아직 가리사니를 잡지 못하고 이마의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기만 했다.

"이거 마음만 조급해지고 도통 생각이 나나애 말이지"

보옥은 점점 난감한 표정이 되어갔다.

보채가 다시 속삭였다.

"당나라 시인 전익의 시 중에 "파초"라는 시가 있잖아요.

그 첫머리를 기억해봐요"

"글쎄...?"

보옥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냉촉무연..."

보채가 여기까지 읊조리자 그제서야 보옥이 생각이 난듯 그 다음 구절을
이었다.

"...녹랍건"

"냉촉무연녹랍건"은 "불도 켜지 않은 초 연기도 없고 녹랍은 마르기만
한다"는 뜻이었다.

"이제 알겠어요? 무엇을 고쳐야 할지"

보옥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녹옥을 녹랍으로 바꾸면 될것이었다.

옥 자를 랍 자로 고치고 보옥이 가만히 문장을 읽어보았다.

"녹랍춘유권"

그 문장은 파초가 봄볕에 녹랍인양 오그라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푸른 옥처럼 오그라들어 있다는 전번의 표현보다 훨씬 나아진 셈이었다.

사실 파초가 오그라든 모양을 옥에 비유한 것은 억지에 가까운 표현이라
할수 있었다.

그 문장이 풀리자 이홍원에 관한 시는 금방 완성되었다.

그 다듬 행렴재망, 즉 한갈산장에 관한 시로 넘어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