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전두환전대통령 구속이 향후 기업경영에 미칠 파장을 짚어내느라
부산해졌다.

특히 3일 전격 단행된 전전대통령 구속이 4일로 예정된 노태우전대통령
기소와 맞물려 당분간 경제를 냉각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이날 대기업들은 표면적으로는 여느 일요일과 다를 게 없이 대부분 사무
실문을 잠근 채 휴무를 실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현대 삼성 LG 등 대다수 대기업그룹들이 96년도 상반기
대졸신입사원 공채 전형을 실시하는 날이라 다소 부산하긴 했다.

그러나 실무 관계자를 제외한 대부분 고위 경영진은 출근하지 않은채 자
택 등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사태를 파악하느라 부산하게 돌아간 "정중동"의
하루였다.

2일 오후부터 전씨 구속이 예고됐던 만큼 주요그룹 총수들은 자택 등에
핫라인을 열어놓고 측근 임원들로부터 향후 사태전망을 시시각각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전두환 변수"가 검찰의 향후 노씨 비자금수사와
어떤 함수관계를 이룰 것이냐는 점이다.

재계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전씨 구속이 몰고올 파장을 걱정하고 있다.

첫째 전씨 구속과 이에 따라 본격화될 "12.12와 5.18수사"는 노씨 비자금
수사를 더욱 강성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전망이
다.

무엇보다도 현 정부가 "구악 일소"를 최대 명분으로 내세워 전정권 시절의
모든 비리와 부정.불법을 파헤칠 것임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씨 구속등 최근 일련의 사태 전개에 대해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근본부터 바로잡는 대수술에 나선 점에서 환영할 일"이라면
서도 "그 불똥이 기업들에까지 세게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환영
반 우려반"의 심경을 털어놨다.

정부가 노씨 비자금사건의 돌출로부터 꼬이기 시작한 대선자금 논란등 현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전씨 구속이라는 최종 승부수를 띄운 만큼,앞
으로의 비자금 수사에 대한 처리 강도역시 한단계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게
재계의 "감"이다.

그 조짐은 검찰이 당초 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을 불구속키로 했던 방침에서
돌연 선회해 전격 구속하면서 이미 예고됐던 게 사실이다.

재계에서는 그외에도 최소한 1~2명의 대기업총수가 추가 구속되는 등 검찰
의 사법처리 강도가 높아질 것이란 "각오"를 해왔다.

나머지 30여명의 총수들도 줄줄이 "뇌물공여 혐의"로 사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게 분명한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총수들이 뇌물죄로 법정에 서는 자체만으로도 대외적인 기업이
미지가 영락없이 실추되는등 타격이 클 것이란 판단아래 약식 기소 등 "차
선책"을 이끌어내느라 동분서주해 왔다.

S D그룹 등은 임원들을 총동원하다시피 해 최대한의 선처를 얻어낸다는 전
략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전씨 구속사태로 정부 분위기가 더욱 냉랭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
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전씨에 대한 수사 방향에 따라서는 재계가 노전대통령에게 건넨 비자
금 뿐만 아니라 전정권시절의 이른바 "정경유착"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전씨의 경우 뇌물수수에 대한 사법적 공소시효(5년)가 훨씬 지나간
상태여서 법적 추궁을 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대기업의 "전죄"를 바라보는 여론의 눈길이 더욱 냉담해지는 등 분위
기가 재계에 이롭지 않은 쪽으로 악화될 개연성은 있다.

셋째는 정부가 전씨와 그 측근에 의한 "12.12,5.18수사"를 매끄럽게 처리
하지 못한채 특별검사제 도입 문제 등 장기적 정쟁에 끌려다닐 경우 경제
전반에 또 한차례의 일대 타격이 뒤따를 것이란 우려다.

가뜩이나 총수들의 비자금 연루로 재계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아 있는 터
에 실물 부문에까지 주름이 가해질 경우 내년도 사업에 큰 차질이 불가피
할 것이란 지적이다.

한마디로 재계로서는 전씨 구속사태가 그 역사적 당위성을 논외로 하고
경영환경 측면에서만 볼 경우엔 "산너머 산"의 3중악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차분하게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새해 사업계획을 확정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기업들이 예기치 못했던 변수의 돌발로 "체력"을 소모하고 있
다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당초 지난달 확정 발표키로 했던 정기 임원 인사를
두차례나 연기해 빨라야 이번주 중반에 뚜껑을 열기로 했다.

현대 LG 대우 선경 쌍용 등도 일찌감치 내년도 사업계획의 가닥을 잡아놓
은 상태에서 새해 경기를 뒤흔들 수도 있는 대형 변수가 돌출함에 따라 확
정시기를 미루고 있는 상태다.

대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비자금을 비롯한 일련의 정치 사건에서 재계는
수동적 종속 변수일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며 "마냥 일손을 놓을 수도 없는
만큼 최소한 향후의 사태 전개방향을 큰 가닥이라도 잡을 수 있게끔 명확
한 일정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