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군 유산공단내 위치한 화승화학 직원들은 이른아침 "I LOVE
YOU"라고 쓰여진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노와 사가 서로를 위하자는 마음의 표시며 고객을 향한 회사의 경영
방침이다.

노사가 하나라는 마음은 공장내까지 이어진다.

근로자들은 현장방문시 보여주는 조원영사장의 형님같은 따스한 마음과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조사장의 손길에서 신뢰감을 더욱
느낀다.

그러나 조사장이 이곳에 부임한 지난87년에는 노사간 반목과 갈등이
팽배해 언제 분규가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동차용 및 산업용 고무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로 당시 고무산업이 어려울
때라 근로자들은 경영진을 신뢰하지 않았다.

현장근로자와 관리직사원과 근무복까지 다를 정도로 노사 일체감 조성은
남의 일이었다.

조사장은 현장의 이런 분위기를 1백80도 돌려놓았다.

우선 불신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믿는 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중장기 경영계획을 제시하고 근로자들에게 이를 꼭 지킬 것을 약속하고
한해한해 이를 실천해 갔다.

보너스 지급의 경우 96년까지 6백%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이미 지난해
6백30%를 지급함으로써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또 회사의 경영수익에 상관없이 생산성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해
생산의욕을 일으켰다.

지난해 근로자들은 1인당 월평균 4만6천4백원의 생산장려금을 지급받았다.

기능직사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지난90년 관리직과 같은 승진제도를 도입해
현재 과장인 근로자가 나왔다.

지난92년부터 사원아파트 2백45가구를 지어 무주택근로자에게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대부분 입주근로자들은 5년안에 자기집을 마련해 나간다.

해외연수도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

매년 40여명씩 현장 근로자를 중심으로 중국 동남아등지의 해외로 보내고
있다.

지난92년에는 조사장과 유동호노조위원장 단둘이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노사간 몸으로 부디끼며 느껴보자는 취지에서다.

여행중 두사람간의 호칭은 어느새 형님 아우로 변했다.

노사관계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예다.

조사장은 퇴근길에 통근버스 주차장에 있는 단촐한 포장마차에 자주
들린다.

직원들이 포장마차에서 한잔한다는 것 알고 일부러 찾는 곳이다.

조사장은 술잔을 돌리며 근로자과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현장사원과 술먹을 때가 가장 마음편하다는 조사장의 말에서 근로자를
향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조사장은 "노조는 회사경영의 최대 협력자로 생각하며 건전한 노조는
기업 언로역할을 수행하며 기업 발전의 토대가 된다"고 노조관을 피력
했다.

노조도 회사의 힘찬 미래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협조적 노사관계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유위원장은
노조회의를 통해 "일을 열심히 하자"고 결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91년 7월 회사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도 노조의 발전에 협조하고 조합원 개개인의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하는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노사화합을 위해 애쓴 노력에
감사한다는 것이다.

여느 사업장에서 보기드문 일이다.

노사한마음은 임단협 석상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난해 임금협상을 단한차례로 끝냈고 올 임단협 협상은 3차례로 끝냈다.

무리한 소모전없이 서로가 실리를 찾는 선에서 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회사가 노조 제시안보다 많이 제시해 노조가 깜짝놀란 적도 있다.

노사간 협력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월 휴무일을 노사가 함께 의논결정하고 있으며 신입사원 면접시 노조도
참석해 함께 일할 동료를 직접 선발한다.

"노조의 경영참여가 사실상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는 박보영총무부장은
"타기업과는 달리 이직율이 적어 인력난이 없는 회사"라고 자랑한다.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근로자들은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회사는 품질향상
시설확충에 나서 매년 30% 이상의 성장율을 달성하고 있다.

지난89년 2백59억원에 불과한 매출이 올해는 5배나 많은 1천5백1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의 사활과 발전은 그기업의 문화흐름과 문화를 형성하는 노사 모두의
공유된 가치의식에 달렸다"는 조사장의 경영철학에서 화승화학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느낄수 있다.

< 양산 = 김문권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