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씨 비자금 사건과 과거 청산작업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우리의 근세사는 정경유착의 틀 속에서 기업과 정치 세력들이 먹이사슬을
형성하여 오늘의 한국사회를 있게 했다고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 경제는 어정도 성장하여 후발 개도국의 성장모형으로 인용되고
있지만 정치수준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경제규모에 걸맞게 정치.사회가 선진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꼭 한번은 치러야 할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튼튼하여 부정부채가 만연된 나라의 경제성장율은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하여 더 낮다는 연구 결과에 비추어 볼때 우리나라의
부정부패의 정도가 과거와 같이 심하지 않았면 우리의 경제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높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우리경제의 질적성장을 통한 선진화를 통한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더이상의 부정부패는 용인되어서는 안 될것이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세계를 누비며 열심히 일해온 기업인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참기어려운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발전을 위하여 쌓아온 공적에 대한 평가는 받지 못한채 정치
권력과 연계된 온갖 비리에 연루된 자라는 여론의 지적에 상당한 섭섭함을
느낄만도 하다.

무소불위한 절대권력 앞에서 누가 그들이 요구한 정치자금을 거역할 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살기 위하여 돈을 준 피해자가 그 돈을 주었다고
처벌을 받는 격이라고 하소연 할 만도 하다.

경제력의 뒷받침이 없는 삶의 질은 향상될 수가 없기 때문에 경제에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바램일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이 참작되어 노씨를 기소하면서도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였던 것 같다.

과거의 상황이 어찌 되었건 대기업의 대주주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현존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해소되지 않고는 우리의 경제구조로
보아 계속적인 안정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전경련을 중심으로한 재계에서도 이런 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업
윤리헌장"을 제정하고 "경영풍토 쇄신위"를 구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전문경영인의 역할제고를 통한 자율경영체제 확립,
자율적인 경쟁풍토 조성,대.중소기업간 협력확대,기업의 사회공헌사업확충,
환경친화적 경영풍토조성, 올바른 정경문화조성등의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정치 사회적인 변혁기 때마다 재계의 이같은 결의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추상적인 구호대신 보다 실질적으로 재계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것이다.

대기업의 대주주들은 앞으로는 "기업이 내 것이다"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수백억원의 기업자금이 대주주 마음대로 아무런 표시없이 정치자금등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

다수의 주주동의없이 상상할수 없는 일들이 지금껏 우리 기업에서는 일어
났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투자자들에게 이와같은 현상들은 자기들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사건들로 비춰지고 있다.

우리나라 회계정보의 공신력에 반신반의하던 외국인들은 노씨 비자금 파동
에 의해 각 기업이 납부한 정치자금의 구체적인 액수가 백일하에 들어난
지금 회계정보를 더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도 기업의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투명한 감시시스템의 구축에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소유구조의 특수성 등을 이유로 미국식
사외리사제도입이나 독일식 감사제도입에 재계는 항상 부정적인 자세를
견지하여 왔다.

앞으로의 우리 앞에는 국경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세계화현상의 심화가
기다리고 있다.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제도의 도입에 적극성을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식이든 독일식이든 어느 제도가 우리 토양에 맞을 것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현재와 같은 우리 기업의 폐쇄적인 소유
구조는 국제경쟁력 강화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은 이제 자기자본비용을 실질적으로 부담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매우 싼 자금으로 착각하여서는 안된다.
증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바라는 최소한의 수익률을 실현시켜 주어야 할
책임을 져야 한다.

주주들이 요구한 수익률을 실현시켜 줄 자신이 없으면 증자를 해서는 아니
된다.

앞으로 주주들은 집단소송제등의 도입으로 기업에 대응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업들은 액면가 기준으로 실시하고 있는 배당도 시가기준
으로의 전향적인 변화를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들은 기업윤리의식 정착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윤추구와 윤리가 결코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며, 확고한 윤리의식에
입각한 경영이 장기적인 성장발전에 필수적임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