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조짐은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온다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물 한줄기로 봄을 예비하듯이 세상사에 있어 "어느날 갑자기"는
없는 듯하다.

다만 우둔한 탓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기에 작은 조짐은 볼 수가 없어
눈앞에 시험된 후에야 비로소 법석을 떠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변화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당장 신문을 펼치면 인터넷은 더이상 신조어가 아니고, M&A(기업인수합병)
혹은 WTO(세계무역기구)체제라는 용어가 수시로 등장한다.

세계화 기치아래 기업은 경영혁신, 생산성향상과 기술개발은 물론 기업
윤리강령까지 선포하면서 변신을 꾀하고 있으며, 대학교마저 광고를 시작
하는가 하면 개혁과 혁신이 국민적 언어가 되었다.

우리도 양적 사회에서 탈피하여 질을 중시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으로
될 수 있겠다.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변화에 대한 당위성과 방법론을 정리할 여유도
없이 사회 전부문이 동시다발적으로 변화의 물결에 참여하고 있는 듯하여
노파심이 앞선다.

행여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한다거나 다반사로 회자되다보니 무감각해져
본질을 망각하지는 않을까 의굿미이 들기도 한다.

이미 변화를 얘견하고 능동적으로 주도하기보다는 아직도 세계적인 대세에
동승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장기 사업일수록 진척도에 다라 중간점검이 필요하듯이 이제는 변화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왜"와 "어떻게"를 한번쯤 재검토하여 기본인식부터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얼마전 경영혁신과 관련한 리엔지니어링, 벤치마킹같은 신기법이 우후죽순
으로 소개되어 큰 반향을 얻었으나 과연 경영혁신과 체질개선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는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면 그원인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평가해 본다면 우리가 작금의 변화를 추진하는데 있어 귀중한 교훈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변화는 시대적 요청이며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
하려는 우리의 의지이자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목마른 나그네에게 버들잎을 띠워 물을 건넨 진혜를 상기해 보자.

훨씬 여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