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은 1896년 황금삼중관을 20만프랑에 사들여 눈에 잘
띄는 자리에 7년동안이나 전시했다.

이 금관에는 남부러시아의 올비아라는 고대도시 유적에서 발견된 것임을
보여주는 노문이 새겨져 있었다.

"올비아 원로원과 국민으로부터 불패의 사이타페르네 사람들에게"라고
된 그리스어 명문이었다.

그 금관은 실은 가짜였다.

샤프셸레 호흐만이라는 러시아의 소맥상인이 이스라엘 로우호모프스키라는
금세공업사에게 2200여년전의 고대스타일 금관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여
전시되기 몇달전에 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파리의 몽파르트르에서 살던 엘리나라는 화가가 그 밑그림을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 금관은 지금도 루브르에
전시되고 있을게 틀림없다.

로우호모프스키가 그 금관을 만들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 엘리나의
한 친구가 영광이 무성화가에게 돌아가는 것을 시기한 나머지 진상을 폭로
했던 것이다.

뉴욕의 메토로폴리탄박물관도 이탈리아의 위작전문 조각가들인 리카르디
삼형제로부터 사기를 당한 적이 있었다.

1918년 에트루리아(기원전800년제의 이탈리아 고대국가)의 점토로 된
"대전사상"을 당시로선 파격적인 4만달러에 사들였으나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뒤에야 위작임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 이전에 그들로부터 사들인 "노전사상""거인상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메트로폴리탄이 1933년에 그 3점의 조각상을 전시하면서 그것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논쟁이 표면화된 이후 광범위한 조사와 감정이 이루어져 위작의
실체가 드러 났다.

그러나 그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준 것은 그 위작들을
만들 때 도와준 알프레도 피오라반티였다.

1960년 그는 "노전사상"의 잃어버린 왼손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로마의
미국영사관에 나타나 모든 사실을 자백했던 것이다.

이처럼 미술품감정이란 어렵기 짝이 없다.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던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도
어처구니 없게 가짜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망신을 당했으니 말이다.

최근 경찰당국은 문화재관리국에서 가짜 판정을 받은 고미술품들이 다시
고미술협회에서 진품 판정을 받아 값이 폭등한 사실을 밝혀내고 그 과정
에서의 감정조작여부를 가리는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그동안 하나의 고미술품을 놓고도 전문가들의 진위판정이 달라졌던 과거의
사례들에 비추어 볼때 그 귀추가 자못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