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이 붕락하고 있다.

처절했던 지난 90년의 악몽이 재연되고 있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모두가 외투깃을 올려 세우는 삭풍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1년전 이"증권가 사람들" 시리즈를 시작할 때 증권가의 인물군상을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에 비유했었다.

시지프스는 신의 저주를 받아 커다란 바윗돌을 뾰족한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 하도록 운명지어진 자를 말한다.

물론 밀어올린 바위는 정상에 올라선 바로 그순간 반대 방향으로 다시 굴러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시 밀어올려야 하고-.

주가가 폭락해 원금마저 날려버린 투자자들이 속출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증권회사 직원들이 늘어날 때 우리는 늘 시지프스를 떠올리곤 했다.

화려한 승리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증시전체가 함몰해 꺼질
때는 그 누구라한들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패잔병이요 모두가 이 힘든 전쟁에서 생존자가 되기 위해 그나마의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오직 제 갈 길을 갈 뿐인 냉정한 주가 앞에서 모든 자는 다만 평등한
인간일 뿐이며 마이다스의 손을 꿈꾸는 몽상가들일 뿐이다.

이것이 증권가 사람들을 기록해왔던 우리들의 원칙이었다.

"증권가 사람들"은 그동안 증권사 최고 경영자에서부터 말단 사원까지
빼놓지 않고 똑같은 비중으로 기록해 왔다.

"직업이 사장"이라는 한진증권 송영균 사장이나 평생을 바쳐 대신증권
그룹을 일궈낸 양재봉 회장 같은 분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존경받고 비난받는
양면을 모두 기록하고자 했다.

이제 갖 증권회사에 입사해 들어온 신입직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증권사 야전 지휘관들인 지점장들은 또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도
그들의 고통과 번민, 즐거움과 한희를 같이 나눈다는 원칙으로 다루어왔다.

심지어 작전세력으로 적발돼 증권감독원의 조사를 받고 끝내는 검찰에
불려가 재판정에 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기록하고자 했다.

증권가에서는 모두가 유혹받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 시리즈가
끝나도 계속 될 것이다.

어쩌면 증권시장의 몽상가 그 누구라도 일말의 성공 가능성만 있어도 주저
없이 작전에 뛰어들지 모를 일이다.

이 칼럼이 써왔던 사람들중엔 불과 수천만원의 돈으로 수십억원을 증권투자
에서 벌어들인 한국의 피터린치도 있었지만 투자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가정
이 박살나고 부부가 갈라서며 직장마저 엄망진창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더욱 큰 애정으로 기사를 써왔다.

물론 이 칼럼이 다루지 못한 분야가 많다.

증권가의 군상들중에는 은행같은 대 금융기관의 자산운용을 떠맡아 고민
하는 매니저들도 있고 고비때마다 투자자들보다 더욱 많은 고민을 해야하는
증권정책 당국자들도 있다.

이들도 증시가 폭락할 때 잠못자는 긴밤을 새우기는 마찬가지이다.

상장기업의 재무 담당자들도 넓게 보면 증권가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때로는 너무나도 강한 내부자 거래의 유혹을 받지만 그래도 꾹 참아내는
그들이다.

회사 방침에 따라 자본금도 늘려야 하고 주가도 관리해야 하지만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투자자 이상으로 타들어가는 속을 달래야하는 그들이다.

증권가에서 한발짝 떨어져 시장을 지켜보는 이들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씌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제 증권가 사람들 시리즈가 끝나고 이한해도 저물고 있다.

모두가 증권시장이라는 큰 바다를 떠다니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
증권가 사람들을 쓰면서 느끼게 된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새해에도 증권가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바다를 떠다닐 것이다.

어떤자는 칠흑의 밤 바다를 헤메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에게는 순풍에
돗단 그런 항해이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