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국제위기그룹이 “러시아와의 관계, 서울의 격변, 트럼프의 엇갈린 신호에 자극받은 김정은이 어떤 형태로든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며 ‘2025년 주목해야 할 10대 분쟁’ 보고서에 한반도를 포함했다. 2023년과 2024년 보고서엔 없던 일이다. 한반도 안보가 극도로 불안해졌다는 것이다.안 그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미국에 “최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혈맹이 됐고 유사시 군사 개입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한국 일본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을 겨냥해 군 시설은 물론 원전, 포스코 등 주요 인프라까지 미사일 공격 표적으로 삼은 사실도 드러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년사에서 “누구도 조국 통일의 역사적 대세를 막을 수 없다”며 대만 압박을 이어갔다.설상가상으로 곧 있으면 더 독해진 미국 우선주의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가 열린다. 1기 때 트럼프의 폭주를 견제한 ‘어른들의 축’이 사라지고 백악관은 트럼프 충성파 일색이다. 트럼프가 취임 후 김정은과 다시 만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한하거나 핵 시설 일부만 폐쇄하는 대가로 북핵을 용인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2019년 하노이 협상 때 하마터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수도 있었다. 방위비 분담금을 조금 더 올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 안보 여건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물론 움츠러들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처럼 고래 싸움에 등 터지기만 하는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로 비유되는 ‘미들 파워’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
정부가 소비 진작과 취약계층 보호를 골자로 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어제 내놨다.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기보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집중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인데 현시점에서 최선으로 보인다. 경제는 내수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수출마저 1.5%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란 게 정부 전망이다.예산의 67%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고 18조원 규모의 공공부문 재원을 총동원하겠다는 계획은 내수 추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지난해 대비 추가 소비분에 소득공제를 더 해주고,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한시 인하하기로 한 것도 경기 방어에 도움이 될 듯하다. 배달라이더와 대리기사 등에 적용하는 원천세율을 인하하고, 소상공인 지원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자영업 시장 추락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정부의 경제살리기 총력전이 탄력받으려면 국회 호응이 절실하다. 반도체법, 전력망법, 고준위방폐장법, 해상풍력법 등 미래 먹거리 법안 처리가 대표적이다. 여야 이견이 크지 않은 만큼 뒤로 미룰 하등의 이유가 없다. 김상훈 여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1월 처리를 제안한 만큼 더불어민주당의 화답을 기대한다. 야당은 이와 함께 정부가 다시 추진하기로 한 밸류업 세제 개편에도 전향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배당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과 개인투자자의 배당소득세 감면이 핵심인데, 야당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한 사안이다. 투자자들이 해외로 떠난 뒤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독일 헌법학자인 카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도덕이 선악의 구분이며 미학이 미추(美醜)의 대립이듯 정치의 본질은 피아식별이라는 것이다.한국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구조여서 내 이익을 침해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당리당략 앞에서 상대와의 대화와 협상은 뒷전이기 일쑤다. 정치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문제 해결 과정과 주체가 엉뚱한 곳으로 넘어간다. 한국에선 주로 사법부가 그 악역을 맡는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나오는 배경이다.대부분 헌법재판소가 해결사 역할을 담당했다.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감사원장 등 총 10건의 탄핵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1988년 이후 2023년까지 접수한 탄핵 사건(7건)보다 많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위헌법률심판과 권한쟁의, 헌법소원 등 다른 미제 사건도 1354건에 이른다.비정상적인 상황에 신임 재판관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제 취임한 조한창 헌법재판관은 “정치적 영역에서 해결돼야 할 다수의 문제가 합의되지 못한 채 사건화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으로 어려운 일들이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사법의 정치화’도 못지않다. 판사들이 사법적 판단에 자신의 정치 성향을 투영하는 경향이 노골화하는 양상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늑장 판결에서 잘 드러난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1심 판결까지 4년 가까이 걸렸다. 유죄 판결 난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이 임기를 다 채운 뒤였다. ‘조국 사건’ 역시 1심에만 3년 넘게 소요됐다.윤석열 대통령 체포·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