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과 대옥, 보채 셋이서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보옥의 방 쪽에서 왁자지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가 누구랑 싸우는 거야?"

보옥이 대옥과 보채를 쳐다보며 물었다.

"도련님의 유모가 습인을 못살게 구는 것 같아요.

또 노망기가 도진 모양이에요"

"뭐 지금 습인이 아파 누워 있는데, 저 할망구가"

보옥이 불끈 화가 나서 달려가려 하였다.

보채가 얼른 보옥의 팔을 붙들었다.

"유모한테 대어들지 말아요.

그래도 어릴 적부터 키워준 유모잖아요"

보옥이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걸음을 조금 느리게 하여
자기 방으로 가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이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방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자리에
누워 있는 습인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이년아, 네가 혼자 잘나서 이만큼 된줄 아니. 내가 뒤에서 돌봐준
덕분이라는걸 너도 잘 알지?

그런데 내가 왔는데도 버르장머리 없이 드리누워 인사 한마디 없어?
못된년, 요망한 년"

습인이 겨우 정신을 차린듯 멍한 표정으로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워
변명하였다.

"말씀드렸잖아요.

몸이 아파 땀을 내고 있는 중이라구요.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오신 줄을 미처 몰랐다구요"

습인이 보옥이 방으로 들어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욱 간곡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노파는 보옥을 의식하고는 더 기승을 부렸다.

"너 버릇없는 거 이번만이 아니야. 살살 꼬리를 쳐서 도련님까지
속여 먹고.

그러니 도련님도 네년 말만 듣고 나같이 늙은 것은 무시한단 말이야.

몇푼 안되는 돈에 팔려온 종년 주제에 도련님을 넘겨다봐?

너 정 그러면 억지로 어느 하인놈에게 붙여주고 말거야.

그래도 도련님에게 꼬리를 치나 두고보자"

이 노파의 말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내가, 내가 뭘 도련님을 속여먹었다고 그래요? 으흐흑"

드디어 습인이 분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보옥이 급히 습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부축하여 도로 자리에 눕혀주며
이 노파에게 말했다.

"유모, 보다싶 습인이 감기 기운으로 몸이 아파 약을 먹고 땀을 내는
중이잖아요.

그러니 제발 그만 들들 볶으세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