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습인을 위해 변명을 해주자 이노파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도련님은 저 여우 같은 년의 편을 들고, 나같은 건 이제 쓸모없다
이거죠?

도련님이 이만큼 큰것이 누구 덕일 줄이나 아세요?

이제는 도련님이 내 젖을 먹지 않는다 해서 저년들이 나를 업신여겨도
못 본 체하시는데, 아이구 분해"

이노파는 정말 서러운지 그만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방급 습인이 이노파의 말에 속이 상해울었는데, 이제는 이노파마저
습인보다 더 큰 소리로 울어대자 보옥은 습인과 이노파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때 대옥과 보채가 들어와 이노파의 두 팔을 각각 붙들고 위로하였다.

"유모, 도련님이 설마 유모를 무시할 리가 있겠어요?

싸움을 말리느라 습인의 변명을 좀 해준걸 가지고.

글고 철없는 계집아이들이 한 짓인에 유모가 너그럽게 봐주세요.

일일이 따지자면 한정이 없잖아요"

희봉도 보옥의 방으로 건너와 이노파를 달래었다.

"유모는 나이 드신 분인데 젊은 것들과 이렇게 소란스럽게 싸우면
어떡해요? 누가 잘못했는지 이름만 대면 내가 혼을 내줄게요.

자, 유모, 내방으로 가세요.

방금 구운 뜨끈뜨끈한 꿩한마리 갖다 놓았으니까요.

그 꿩고기로 안주 삼아 우리 술 한잔 해요.

이 추운 날에 이것보다 더 좋은게 어디 있겠어요"

희봉은 아예 이노파의 겨드랑이를 한 팔로 끼고는 끌고 나갔다.

이노파가 방에서 나가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옥은 습인에게로 다시 다가가 이불을 다독거려주었다.

"이제 마음 푹 놓고 아까처럼 땀이나 내라구"

그러나 습인은 이불을 뒤집어쓰려고는 하지 않고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나 때문에 도련님이 유모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으니 언데 또 유모가
꼬투리를 잡아 괴롭힐지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도련님은 유모앞에서 내편을 든다든지 하지 마세요.

억울하더라도 그냥 나 혼자 당할테니까요"

그러면서 습인이 또 울먹였다.

보옥이 습인을 달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면서 보니 습인이
그때까지도 비녀와 귀걸이를 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불을 쓰고 땀을 내면서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렇게
장신구를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보옥은 그 비녀와 귀걸이를 벗겨주며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다.

습인이 치렁한 머리채로 편하게 누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고마워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