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각에서 이목을 끈 대목의 하나가 통일원 부총리 인선이 아니었나
여겨진다.

통일원이 내각의 부서가 된 지 26년, 부총리로 승격한 지 5년이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통일원장관 인선에서 일관된 기준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굳이 그간의 공통점을 추린다면 장관 시대에는 조각상 숨통을 돌릴 한
쿠션으로, 버리긴 아깝고 쓰려니 용처가 어중간한 인물을 앉혔던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부총리격상 이후론 대통령이 큰 재목이란 매력을 느낀 인사를 더 큰 용도로
예비하는 복안을 그 속에 깐 듯한 경우를 엿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는 통일과업 자체를 위한 최적의 인선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통일과업 자체의 성격에 연유한다.

어떤 때는 이 시대 가장 중대한 과업이 그 이상 없다고 느낄 때가 있고,
반대로 경제 국내정치등 현실에 시각을 맞추면 퉁일이란 마치 뜬 구름처럼
허망해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임면권자인 대통령으로서 스스로가 남북을 통일한 대통령으로 역사
에 남고 싶은 충동이 강할수록 통일원에 중량급의 적재를 앉히려는 충정이
생길 수 있다.

사실 인지상정은 그쪽이다.

그러나 그 평가는 임명권자의 내심 여하보다 당면 내외 정세가 결정 인자다.

최근의 국내정국, 남북한 관계의 진전과 북한내부 동향,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주변정세의 흐름을 종합할 때 정부가 통일정책 방향을 전면 점검하고
새 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가장 절실한 시점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대 정권의 통일정책을 개괄할 때 가장 우려스러운 징후는 어떤 확고한
기본 방향과 일관된 기본 전략을 갖고 추진하기보다 정권유지적 필요나
대통령의 느낌하나로 그간 쌓인 대북관계 경험마저 하찮게 외면하는 즉흥성
을 자주 노출했다.

비근하게 올들어 대북 쌀원조를 둘러싼 목표의 즉흥변경 발표, 교섭창구의
혼선, 준비 미숙에 의한 수송상의 말썽등 저지른 시행착오와 불협화음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실무 레벨의 실수가 아니라 상위정책 입안의 무원칙이 주요 원인
이라 봐야 한다.

최고정책의 이런 차질은 어디서 오는가.

한마디로 북한의 내부, 그 주변정세, 세계사의 흐름,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오판에 기본적 결함이 있다고 본다.

일반은 물론 식자들의 대북관 하나를 봐도 김일성 사후의 북한을 고립무원
의 국제 정세에다 만가지가 남쪽 편이어서 훅 불면 날아가는 등잔불처럼
하찮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가 하면 무적의 군사 강자란 과대공포에 이르는 양극화현상이 춤을
추어 정부의 대북관이나 통일정책 역시 그 영향권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예측 불허로 급변을 거듭하는 세계정세, 어려움속에 사력으로 출로를 찾는
북한 사정을 고려할때 넘치거나 처지지 않는, 그러면서 세심한 통일정책
기반을 다질 필요를 절감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개방-개혁할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강조한 신임
권오기 부총리의 자세나 성품으로 보아 기대가 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