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필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말만큼 조심스러운 것도
드문 형편이다.

''침묵은 금이다'' ''촌철살인''같은 경구로 말을 아끼라는 충고와
함께 언어의 경제성을 환기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언어의 홍수시대다.

물론 일절 말을 금지한 가운데 해탈의 염을 갈구하는 참선도 있어
사람에게 말하고픈 욕구란 얼마나 강렬한지 말의 홍수현상에 이해 못할
입장은 아니다.

그런데 풍요속의 빈곤이랄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군데군데 문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우리말은 경어가 발달한 언어체계인데 적절히 사용하는 예가
점차 줄어들뿐 아니라 그나마 사용한다해도 엉터리 사용법이 많다.

일례로 웃어른께 아랫사람을 지칭하면서 극존칭을 태연히 구사하는가
하면 ''저''라는 용어를 잊어버린 세대도 있고 심지어 ''저희 나라''라고
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여기에다 미묘한 어감차이를 전달할 목적도 아니면서 습관적으로
외국어를 섞어 쓰는 현상, ''같아요'' 증후군으로 표현되는 모호한
말투까지 언급한다면 우리말이 얼마나 일그러지고 있는가를 쉽사리
짐작하리라 믿는다.

언어란 개인의 교양과 의식수준을 표출하는 척도일뿐 아니라
민족문화의 결정체이자 민족얼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행여 말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미명하에 섣불리 언어의
민주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오히려 위아래도 없는 말투를 습관화 하도록
조장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는지 숙고해 볼 일이다.

또한 영어 철자가 틀렸다고 부끄럽게 여긴 반면 한글 맞춤법 혹은
용례가 틀린 경우에는 별다른 마음씀없이 넘어간 예가 있었다면 진정
부끄러워할 일이다.

아마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격변기를 살아왔기에 피할
수 없었던 어두운 이면이 언어권에도 영향을 미쳐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는 아닌지 나름대로 진단해 본다.

올바른 언어사용이란 인간관계의 기본이라서 그 중요성을 되풀이 하는
자체가 이미 사족이지만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속담만 기억한다면
한결 신중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