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렬 <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북한에 건설할 원자력 발전소의 경수로 공급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로써 KEDO는 94년 10월21일 제네바 합의 이후 1년2개월만에 대북 경수로
공급 협상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제 곧 발주자인 KEDO(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와 주계약자인 한국전력의
상업계약 체결과 경수로 설계등 본격적인 건설작업이 착수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경수로 공급협상 타결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북미 제네바 합의사항이 구체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골격이 마련된
점이다.

제네바 합의가 다분히 정치적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표류했었으나
공급 협정으로 이제는 국제조약의 성격으로 북한의 핵동결과 핵시설에 대한
사찰 등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조치 이행이 확실하게 된 것이다.

둘째, 남한기술자들의 대거 방북을 가능케 한 것이다.

북한이 "경수로 건설 기술자의 국적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경우도 영사보호
를 해주기로 합의함으로써 남한 기술자들의 방북을 위한 법적기반이 마련
되었다.

10년가까이 걸리는 경수로 발전소 공사에는 연인원 1,500명 가량의 남한
전문가와 기술자가 방북을 하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한의 "벼랑끝 협상전략"이 한계르 보여준 것이다.

북한은 지난 93년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단독협상에서 무력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번 경수로 공급협상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북한은 그동안 과다한 요구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배제하기 위해 엉뚱한
조건을 내세우며 여러차례 북미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한국측이 경수로 비용부담을 지렛대로 하여 원칙적 입장을 단호히
일관되게 밀고 나갔으며, 그것이 주효하여 북한이 사실상의 양보를 감수한
것이다.

경수로 공급 협상 타결과 관련, 한.미의 입장은 북한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는 한편 북한을 개방시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
으로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미국은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 무역제한 조치 철폐,
관계개선 등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개방이 북한체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극히 제한적인
개방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체제도 보존하자는 입장이다.

KEDO측은 북한과의 경수로 협정에서 핵투명성 부장과 북한의 개방을 위해
남한기술자와 전문가의 방북 및 한국형 경수로의 북한견설, KEDO와 계약자인
한국전력의 현장 및 인근 항만~공항 등 관련지역 사무소 설치, KEDO의 요청
이 있을 경우 경수로 사용후 연료의 소유권 포기와 사용후 연료의 국외반출,
KEDO및 계약자의 독자적 보안 통신수단 설치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장기적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45억불에 상당한 경수로
2기와 부대시설, 대체에너지, 3년거치 17년 무이자 분할상환 등을 얻어
냈으며 최소한의 개방을 위해 통행문제의 경우 북한개방에 영향을 줄 판문점
을 통한 육로는 제외시키고 해로와 항공로만 허용했다.

또 북한은 남한기술자들이 북한주민과 접촉하지 않도록 경수로발전소 건설
지역인 신포에 "경수로 특구"를 설정하고 다른 지역과 분리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한은 KEDO와 경수로 협상을 타결한 것이 남북한간에 문호를
개방하거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있다.

북한은 KEDO와 경수로 협상 타결에 즈음해서 남한과의 긴장을 고조시켜
남북한 주민들의 기대심리를 좌절시키고 지속적이 긴장 국면으로 이끌어
체제의 동요를 사전에 억지시키려 했다.

북한은 10월달부터 전투기들을 전방예비 기지로 추진 배치시켜 IL-28폭격기
1개 연대는 서울까지 도달시간이 종전 30분에서5분, MIG기는 종전 8분에서
6분으로 서울공격거리를 단축시켰다.

또 북한은 준 군사력인 경비대 병력을 전시지휘 체계화 했으며, 긴장된
총동원 태세를 견지시켰다.

최근 북한은 당및 당간부에세 "남한으 정치정세는 상당기간 표규할 것이며,
부정축재사건, 5.18특별법 여야 공방으로 한총련 등에 의한 가두투쟁이
확산되고 통치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교육을 시키고 있어 남한에 위기
국면을 조성하고 북한주민들에게 남한혁명을 위해 끝까지 투쟁토록 부추기고
있다.

북한은 40억달러에 해당하는 경수로 2기 5억달러에 달하느 부대시설 추가
비용을 얻어낸 것이 큰 성과이긴 하지만 경수로 공급과정에서 착오가 생겨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경수로 비용 분담문제를 두고 한.미.일간에 의견 합치가 안되는
것도 알고 있으며, 합의과정에서 그동안 유지해 온 한.미.일 공조체제가
금이갈 가능성도 보고 있다.

다른 문제들이 잘 풀린다 해도 북한이 나중에 쓸 수 있는 카드는 또있다.

KEDO가 주선해 준 국제금융기관의 상업차관 계약을 북한이 이행을 못 할
경우 그 책임은 KEDO가 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다 절실히 원하는 것은 경수로보다는 지금 당장에 받을 수 있는
대체에너지, 미국의 무역장벽 철폐 및 관계개선, 그리고 체제보장, 북.일
소교를 통한 배상등이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도 대남혁명이나 무력도발 보다는 북한의 생존을 유지
하는 차원에서 유지시킬 가능성이 높다.

남한을 배제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켜 남한의 대북개방 전략을
차단시키고 북한주민들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한편 경수로 공굽과 관련 민간
차원에서 경협을 유도하여 경제적 압박을 풀려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당면과제는 한.미.일 공조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장기적
으로 북한을 개방시킨다는 원칙밑에 일관성있는 정책을 펴, 결국 북한이
개방의 문턱을 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