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전반적인 활력을 측정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표는 국내총생산
(GDP)이다.

GDP 실질증가율은 곧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GDP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청이 커지고
있다.

GDP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GDP에 대한 불신은 상무부 등 미국정부 안에도 퍼져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GDP는 개인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지출 및
순수출(수출총액-수입총액)의 합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둘로 나뉜다.

산정대상이 잘못됐다는 지적과 산정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소재한 리디파이닝 프로그레스라는 공공정책연구소는 GDP
산정대상을 문제삼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 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GDP는 결코 경제성장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GDP로는 생산이 국가적 건강과 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연구소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실질발전지수(Genuine Progress
Indicator)".

이는 GDP에 무보수노동을 돈으로 환산해 더한뒤 범죄를 비롯한 사회적
파괴와 환경피해 만큼을 뺀 것이다.

리디파이닝측은 이 방식으로 산정할 경우 미국의 GPI가 69년이후 지속적
으로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지난 3.4분기 경제성장률도 정부가 GDP 기준으로 산정한 4.2%보다 훨씬
낮은 1.4%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보수노동이 GDP 산정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거론되곤
했다.

이는 경제학계에서도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는 주장이다.

환경론자들은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도 경제성장률 산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국가의 복지수준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GDP 산정방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잘못된 방식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GDP가 과소, 또는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도 이 범주에 속한다.

그는 최근 시카고에서 행한 연설에서 GDP는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점점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발달로 생활수준이 향상됐고 생산성이 높아졌는데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메릴린치의 이코노미스트 브루스 스타인버그, 모건스탠리의
스테펜 로치 등도 그린스펀의 견해에 동의한다.

스타인버그는 "제대로 집계했다면 90년대의 GDP 실질증가율은 정부 발표치
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는 반대로 산정방식이 잘못돼 GDP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컴퓨터가 대표적인 품목으로 꼽힌다.

기술발달과 생산성향상으로 컴퓨터 가격은 매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상무부가 GDP를 산정할 때는 기준연도(현재는 87년) 가격을 사용
하기 때문에 과대평가된다는 얘기다.

상무부는 GDP 산정방식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GDP를 산정하는 새로운
방식을 내놓았다.

종래의 GDP는 가중치가 기준연도에 고정되는 고정가중치 GDP였다.

반면 새로 나온 GDP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변화를 반영, 전년도와 현재
가격으로 가중치를 산정하는 연쇄가중치 GDP이다.

상무부는 새로운 방식으로 GDP를 산정하면 지난 3년간의 성장률이 발표된
수치보다 1% 포인트 가량 낮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연쇄가중치 GDP 역시 경제의 활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상무부 통계담당관리 출신인 던&브래드스트리트의 수석연구원 조셉 던컨은
이 방식으로는 교육이라든지 컴퓨터 소프트웨어, 금융서비스 등 각종
서비스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GDP를 산정하는 새로운 방식이나 GDP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지표가 공인
되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