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운명의 굴레가 가혹할수록 그것을 견디는 힘은 강해진다.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가난과 억압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한 여자의 얘기다.

주인공 돌로레스 (캐시 베이츠)는 주정뱅이 남편과 가난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간다.

부잣집 가정부로 들어간 그녀는 딸의 장래를 위해 손등이 터지도록
일하며 돈을 모은다.

그러나 어느날 남편이 딸을 추행한 사실을 알고는 복받치는 슬픔과
분노에 몸을 떤다.

그녀는 "지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저금을 찾으러 가지만 그마저
남편이 빼내 써버렸다.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주인여자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암시
해준다.

개기일식이 있던 날 그녀는 남편에게 술을 권하고 일식으로 하늘이
어두워지는 순간 술에 취한 남편은 집 근처 우물에 빠져 실족사한다.

그로부터 15년후.

뉴욕에서 저널리스트로 유명해진 딸 셀레나에게 어머니가 주인여자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내용의 팩스가 날아온다.

황폐한 옛집에서 마주친 모녀는 과거의 악몽과 회한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셀레나는 아버지를 실족사시킨 어머니가 이번에도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실족사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 매키는 그당시 유죄를 입증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변호사 선임을 거부하며 침묵하던 어머니의 무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모녀의 연대감과 화해가 싹튼다.

이 영화는 동양적인 "여인3대의 수난"을 연상시킨다.

돌로레스를 정점으로 과거세대인 주인여자와 미래세대인 딸이 연계되는
구조도 그렇고 돌로레스가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식도 닮았다.

과거와 현재가 한 화면속에서 겹쳐지며 이음새없이 연결되는 기법은
인상적이다.

겨울과 여름, 빛과 어둠을 교차시킨 구성도 탄탄하며 2시간이 넘는
얘기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간 연출력도 대단하다.

( 23일 호암아트홀 개봉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