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금 < 여성단체협 매스컴모니터 회장 >


11월22일은 새벽부터 바쁘고 고단한 하루였다.

대입수능시험을 보러가는 큰 아이를 따라 집을 나섰다.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두 편의 정치드라마 모니터 분석 보고서의 마무리
작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커다란 쇼핑백에 챙겨넣고서.

고사장 주변에는 수험생을 격려하러 나온 재학생들이 붙여놓은 구호들이
현란하게 도배되어 있었다.

수험생이 하나 둘씩 나타날 때마다 같은 학교 재학생이 우루루 몰려가
구호를 외치고 커피와 사탕을 쥐어주는 모습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였다.

평소 학교안에서는 서로 데면데면했을 선후배 사이가 대학입시라는
명제로 인해 동료로서 새롭게 만나는 장면이었다.

고사장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확인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참을 서성이는 중에 처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수험생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충을 나누다보니 긴장된 마음이 풀리면서 아이들이 좋은
점수 받기를 서로 빌어주고 격려해 주게 되었다.

입실 종료와 함께 닫혀지는 교문을 보고서도 종일이라도 서있을 것같은
다른 학부모들의 모습이 시위하듯 보여 편치않은 마음으로 겨우 발걸음을
돌렸다.

내 일이 아니었을 때는 그런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안그럴꺼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너무 밀접해서
서로를 속박해서는 안된다 등등 떠들어댔던 내모습을 떠올리며 실소
하면서도 아이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여협 사무실에서 다른 모니터
회원들과 보고서를 검토하고 수정하는 모든 일이 내게는 기도였다.

마음을 졸이면서 초조해하는 것보다 일이 있어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했고 이렇게 뭔가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잘해 주시겠지
싶기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기에 집을 나섰다.

한없이 밀리는 차량들 사이로 어둠이 짙게 깔리며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홀가분한 표정과 달리 시험이 어려웠다는 큰 아이의 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왔지만 설마했다.

자기방에서 답을 맞추어 보던 아이가 벌개진 얼굴로 들어왔다.

그 순간부터 정지해버린 나의 사고력은 그 다음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보(?)를 듣고서야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남의 안된꼴을 보고서 위로를 얻다니.이번 입시생들이나 부모들의
심정이 모두 그러했으리라.

아이일로 심란하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모니터 보고서는
끝내야 하고.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몸살로 누워 버렸다.

아이가 시험을 잘못 본 것이 내탓인양 고3엄마가 자기일 운운하고 다녀서
일이 이렇게 된게 아닌가 하는 자책에 빠지기도 했다.

주부가 어떤 일을 책임지고 한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절감하다가
왜 같은 부모인데 남자들은 아이의 일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데 여자들은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자책부터 하려드는가
하는데에 생각히 미치자 정신이 들면서 몸을 추수릴 수 있었다.

그 후 보고서 작성하는데 매달리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아이의 일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내 일이 있어서 헤어나기 힘들던 상념을 떨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기 쉬웠던것 같다.

사실 난 이번 수능시험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대체적인 반응은 출제된 문제의 유형이 복합적 사고를 요하는 문제들
이어서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해 준 것으로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

나도 그 의견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아무도 선후가 바뀐 것에 대해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놀랍다.

아이들에게 과목은 낱낱이 쪼개어 따로따로 가르쳐 놓고 생각은 통합적
으로 하라니.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면 먼저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교육의
방법부터 바꾸어 놓고 테스트를 하는 것이 맞는 순서다.

하다못해 그런 문제 유형에 대해 모델을 제시해 주고 거기에 적응할수
있도록 하는 배려라도 해주었어야 했다.

이상하게 우리사회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통념이
깔려 있다.

이번 수능 문제도 문제 자체가 좋으니까 괜찮다는 반응들이다.

앞으로 고교교육도 그렇게 바뀌어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들 점수가 떨어졌으니까 상관없지 않느냐는 태도다.

과연 그럴까.

고교교육은 어차피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듯 하니까 대학입시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녀도 괜찮은 걸까.

수험생들의 낭패감은 좌절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 좋은 경험이었을까.

시험후 답안을 맞추어 보고 너무 심한 충격으로 자살한 학생은 유약한
성격 탓일가.

과정을 도외시하고 결과만을 쫓는 행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치
드라마를 보면서, 요즈음 드라마의 주역들이었던 실제 인물들이 겪는
파행적인 과정이 빚어낸 일련의 결과들은 보면서, 우리사회가 언제쯤
되어야 모든 면에서 선후를 바르게 가다듬고 과정을 중히 여기는 상식적인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