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제법 정성스럽게 사월의 머리를 한번 벗어주고 나서 물었다.

"어때? 머리 가려운 거 좀 시원해졌어?"

"네. 조금 시원해졌어요.

한두 번만 더 벗어주면 가려운게 싹 없어지겠어요.

도련님, 고마워요"

그러면서 사월이 넌지시 상체를 보옥 쪽으로 기울였다.

사월의 어깨와 등이 보옥의 앞가슴에 닿을락말락하였다.

보옥은 벗 같은것은 던져놓고 사월을 뒤에서 와락 안아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사월도 보옥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지 어깨숨을 몰아쉬면서 더욱
상체를 기울여 아예 보옥의 앞가슴에 기대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보옥은 습인이 아파 누워 있는데 차마 다른 시녀를 안을수
없다고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 하여 다시 사월의 머리를 벗기기 시작했다.

사월도 보옥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상체를 도로 반듯이 곧추세웠다.

다음 순간, 사월은 보옥과 자기가 그런 자세를 취한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청문이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온 것이었다.

노름을 하다가 돈이 떨어져 돈을 가지러온 모양이었다.

"어머머, 혼례식도 하기 전에 머리부터 얹어주나요?"

청문이 경대 앞에 벌어진 풍경을 보고 입을 비쭉이며 말했다.

"너도 머리를 벗어줄까?"

보옥이 좀 무안해진 얼굴로 청문의 머리도 벗겨줄듯이 빗을 치켜들었다.

"아이구, 저는 그런 팔자가 못돼요.

잃은 돈을 따와야 한단 말이예요"

청문이 돈을 챙겨들고 부리나케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급하긴, 정말 노름에서 돈을 많이 잃은 모양이지? 사월아, 이제
내 자리를 좀 펴줘"

보옥은 빗을 경대 위에 놓고 일어섰다.

사월이 자리를 펴주자 보옥이 곤히 잠들어 있는 습인을 한번 더
돌아보고 나서 자기 침대로 가서 누었다.

다음날 아침, 습인은 한결 몸이 나아져 일어나 앉아 미음을 조금
먹은 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보옥은 숩인의 병세에 차도가 있는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보채네 집으로
놀러갔다.

거기 가보니 보채, 향릉, 앵아, 기환 넷이서 주사위 두 개로 쌍륙놀이를
하고 있었다.

기환은 보옥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마침 가환이 놀이를 하다가 무얼 속여먹였는지 앵아가 거칠게 하의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한 점이었어요.

여섯 점이 아니란 말이예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