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권영설 <산업1부기자> ]]]

올해 섬유수출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의류수출은 특히 최악이었다.

의류는 지난해보다 8%가 줄어든 44억달러(피혁제품제외)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이러다간 2~3년내 의류입초국이 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성통상은 매우 돋보이는 존재다.

올 수출을 지난해보다 15%나 늘렸다.

해외생산분을 합치면 31% 늘어나 1억7천만달러에 이른다.

비결이 뭐냐는 경쟁회사들의 "시샘어린" 문의가 끊이질 않고 있다고 한다.

나빠진 수출여건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 회사 박풍언사장을 만나
들어봤다.

-남들은 수출이 안돼 내수시장만 파고들고 있는 실정인데 오히려 실적을
크게 늘렸다니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겠지요.

"특별할 것까지는 없지만 지난 3년간 추진해온 수출전략변경작업의 효과가
이제야 나타난 것으로 봅니다.

역설같기는 하지만 우리회사는 수출전략의 핵심을 코스트다운의 포기에
두고 있습니다.

비교우위만 확보된다면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었지요.

예컨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미리 선보여 바이어의 구매욕을 자극한
것입니다.

바이어가 들고 오는 샘플을 그대로 모방해 만들기만 하던 과거의 행태를
떨쳐버린 셈이지요"

-또 어떤 서비스를 제공했습니까.

"상품기획 디자인 시장정보 마케팅방법 물류계획등 모든 분야에서 바이어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지요.

필요한 경우엔 재무상담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뉴욕의 대형체인점 본사에 가서 품평회도 열어주고 있습니다.

품평회는 3년전부터 1년에 수차례씩 열고 있어요.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업체가 이런 행사를 갖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일 겁니다"

-그건 도매업자들인 바이어들의 몫이 아닙니까. 도매업자는 OEM업체보다
기획력도 더 나을테고요.

"그들은 기왕이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려 합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생산자에게 주문을 하게 돼있지요.

이제까지처럼 수동적으로 해서는 곤란합니다.

"주문만 주시오"하며 기다리는 자세로는 경쟁에서 뒤처지게 돼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미리 조건을 제시한다는게 우리의
전략입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기획제안형 OEM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출기업이 그런 부가적인 노력을 독자적으로 하기가 쉽지는
않았겠습니다.

"계열사인 인터패션플래닝을 적극 활용하고 있어요.

패션정보전문회사인 인터패션플래닝은 세계적인 유행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인터패션플래닝에서 제작한 "유행경향전망"책자를 들고가 보여주며 우리
샘플을 내놓으면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지지요"

-패션정보회사만 있어도 수출길이 열린다는 의미입니까.

"필요조건이라는 얘기지요.

충분조건은 수출영업사원들입니다.

신성통상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머천다이저(MD) 디자이너 수준으로
패션감각을 갖출수 있도록 수출영업사원의 교육을 강화해왔습니다.

이제까지 수출영업사원은 그저 바이어들이 갖고 오는 샘플을 확보해
공장사람들만 닦달하면 그만이었지요.

진정으로 옷을 아는 사람들이 수출전선에서 뛰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입니다"

-패션도 그정도면 됐고 수출영업사원의 수준도 그렇게 높다면 이젠
고유브랜드로 수출할 때도 된것 아닙니까. OEM수출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고요.

"고유상표제품을 수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직도 한국제품은
인지도가 낮습니다.

한국의류상품 대부분이 품질과 상품력을 완전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신성통상만이 고유상표수출을 고집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우선 양에서 질겁니다.

다품종소량생산운운 하지만 그렇게 가다간 경영이 어려워질수도 있습니다.

초일류기업이거나 "보따리장수"가 아닌 바에야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생산성을 올리긴 힘들다고 봅니다"

-신성통상의 경우 수출신장세가 이렇게 이어진다면 생산라인증설도
검토할법 한데요.

"늘어나는 수주량은 해외생산으로 충당해 나갈 계획입니다.

지금은 내수시장과 수출시장을 구별해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뉴욕과 파리에 시장조사부서를 두고 서울에서 상품기획을 하며 인도네시아
에서 생산해 미국에 파는 시대가 됐어요.

이렇게 움직이면 흔히들 사양산업이라는 섬유업종도 수출시장은
무궁합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것 아닙니까.

"천만에요.

그동안 우리의 바이어들인 대형체인점이나 도매상들은 코스트에만 집착
했어요.

싼 제품만을 찾아 다녔다는 얘깁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의류수출이 감소한 거지요.

인건비부담으로 가격경쟁력이 후발개도국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바이어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습니다.

싼 제품만으로는 장사가 안된다는 걸 안것 같습니다"

-외국의 바이어들도 "싼게 비지떡"이라는 걸 인식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제 중가 중고가 고가제품들을 새로 확보해 가격대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한국수출업체들은 이같은 새로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