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속에 정계개편의 회오리가 본격화하는 느낌이어서 총선을 앞둔 세모
정가는 더욱 썰렁해 보인다.

시대를 이끌어야 할 정치가 스스로 변화를 모색함은 오히려 당연하나 변화
의 방향은 물론 그 방법부터 원칙에 철저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경계의 소리가 높다.

정가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계기는 집권 민자당의 6.27선거 예상이상
참패였으며 그후 약속을 철회한 김대중씨의 정계복귀, 김종필씨의 이탈
창당이 소위 후 3김시대 현상을 연출해 왔다.

이는 임기전반을 끝내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숙적인 경쟁자들에 대한 총선-
대선의 승리확보를 핵으로 하는 집권 후반기 주도전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모자람이 없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10월들어 비자금 폭로로 점화돼 노-전씨 구속, 5.18특별법 제정을
몰고온 과거청산 요구의 불길은 주변과제 수준의 정가개편 요청을 핵심과제
로 등장시켰다.

시기적으로 내년 4월11일로 다가선 총선의 후보공천이 맞물리자 여-야
불문, 당장 꺼야 할 발등의 불이 돼 있다.

물같이 또는 새판짜기로 불리는 이번 정가개편은 성질상 두가지 행동목표를
갖는 듯 보인다.

하나는 때가 지난 사람을 자의-타의로 내보내는 작업, 돌은 그 자리를
정치신인으로 메우는 작업이다.

그러나 과거 크고 작은 정변때마다 보았 듯이 신구 인물교체는 기성 파벌의
진용을 다소 바꾸고 분칠하는 일시적 효과이상 적었다.

다시 말해 국민이 갈구하던 정치자체의 쇄신은 무산되곤 했다.

그러면 왜 쇄신의도가 빗나가는가.

한마디로 비전의 결핍과 공사혼동이다.

비전이란 무엇 때문에 종래 정치판을 깨야 하며 어떤 정치를 지향해 새판을
짤 것인가의 방향감각이다.

공사 혼동이란 비전이 섰다 해도 부적합한 인선을 자파를 위해서라면 감행
하는 일이다.

바야흐로 거명까지 되면서 여-야 각당의 새판짜기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요란한 소리에 비해 돼가는 꼴은 대부분 기대 이하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는것 같아도 근본 원인은 위의 지적대로 방향상실과
사익 챙기기 두가지다.

노선이 똑같을 수는 없다 해도 이 시점에서 정당이 표방해야 마땅한 공통
목표는 무엇인가.

반부패 청렴정치, 알맹이 민주정치, 경쟁력있는 생산정치 구현의 셋을
꼽지 않을수 없다.

첫째 뿌리깊은 부패정치를 몰아내고 말 그대로 깨끗한 정치를 그 자리에
세우려면 만사를 논리-설득-수범이 아니라 금전수수등 이해교환 조건으로
임해온, 누구나 아는 전역의 인물을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엄정히 바꿔야
한다.

둘째 당-계파 안에서 상명하복 관계에 있는 의리꾼을 선호하지 말고 부의
라면 힘과 돈에도 불굴할 성품을 중용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버텨 줬으면 하는 양심바른 사람은 자진해 나가고 2중인격자가
변색을 해 버티는 그레셤법칙 엄존이 눈에 띄어 문제다.

셋째 사자후의 웅변술 보다 분과위에서 활동할 보통수준 넘는 전문지식을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널리 인재를 구해 이 기준을 공정하게 적용한다면 이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