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특약 독점 전재 ]]]

동아시아지역국가들에게 20세기는 끊임없는 외침과 이데올로기 분열, 전쟁
등으로 고난에 찬 세월이었다.

이런 동아시아가 이제는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북한과 미얀마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성장력을 과시하는
지역이 동아시아다.

세계은행은 2000년에 전세계 경제성장의 절반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동아시아지역에서 힘의 논리에 기초를 둔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안보의 기둥역할을 했던 미-일간 군사협력체제가 흔들거리고,
북한에는 핵무장 움직임이 포착되는가 하면, 중국은 대만 필리핀 등 인근
약소국에 심심찮게 군사위협을 행사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동요를 하찮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정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유무역과 시장경제가 평화적 번영의 열쇠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지역에선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기 보다 정치가 경제를 억누르는
경향이 더 강하다.

때로는 정치적 걸림돌로 경제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따라서 경제발전으로 모든 문제를 순탄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불안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최고실력자 등소평 사망이후의 권력을 놓고 물밑에서 내부권력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89년의 천안문 대학살과 같은 진통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다 중국은 남지나해의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독식하기 위해 주변국들
에게 무력위협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중국이 남동해안의 미개발 에너지자원을 선점하려데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

중국은 매년 10%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고, 연평균 1천만명씩 쏟아지는 신규노동력의
일자리도 창출하기 어렵다.

그런데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수요증가로 중국은 최근 에너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에너지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중국의 10%대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

에너지자원의존도가 높은 일본이나 에너지수출이 경제발전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인도네시아 등은 중국의 에너지자원확보노력을 국가이기주의로
보고 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자원제국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고 본다.

과거 동아시아는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 4대강국의 세력균형으로 평화
체제를 유지해 왔다.

어느 한 세력이 급부상하면 나머지 견제세력들이 뭉치는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동서냉전체제가 무너진뒤 이런 힘의 균형을 동아시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는 내부문제를 해결하는데만도 허덕여 이지역에서 입지를 잃은지
오래고, 미국과 일본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는한 중국의 패권주의 부활
움직임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오랜동안 안보경찰역할을 수행했던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에서 안보는 빠져버린 대신 무역불균형 달러화변동등이 주요 관심사가 됐다.

게다가 미국은 지역안정을 유지하는 부담을 일본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최근 미-일안보협력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표면적인 계기는 오키나와주둔
미군병사의 여중생 강간사건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동아시아 안보
유지비용을 서로 떠넘기려는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패전국 논리를 내세워 자국안보비용조차 부담하지 않고 경제대국
으로 성장한 일본이 미국의 의도를 고분고분 받아줄리 없다.

이런 식으로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사이 중국은 과거
150여년간 누렸던 아시아맹주의 지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NP)에 서명하고서도 핵실험을 감행한다든지, 대만 총통의
미국방문이 허용됐다고 해서 모의침략훈련으로 즉각 항의표시를 하는 모습
에서 중국의 패권주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연합(ASEAN)회원국들은 중국이
남사군도분쟁을 해결하는데 대화 보다 무력을 앞세우지 않을까 크게 우려
하고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위해 아세안포럼을 결성했지만 외부 도움없이
중국의 막강한 힘에 맞서기 힘들어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패권장악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제한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다시 안보협력체제를 강화해 확실한 대응력을 보여 주는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미국이 안보비용을 요구한다면 일본이 전향적으로 그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21세기 동아시아의 번영은 평화정착을 전제로 할 때만 실현될 수 있는
얘기다.

(정리=박순빈기자)

"East Asia''s Wobbles''
Jan.5.@ The Economist, London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