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동에 있는 서병륜 한국파렛트풀사장의 집무실에는 2천여권의 손떼
묻은 외국전문서적이 빼곡히 꼿혀있다.

모두 외국의 물류와 파렛트풀제도에 관한 책들이다.

서사장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77년.

당시 대우그룹에서 물류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을 때이다.

외국의 물류기계전시회를 돌아보다 미개척분야인 국내 물류분야를
혼자서 개척해 보기로 결심한다.

84년 사표를 던지고 세운 것이 한국물류협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물류관리연구원.직원이라야 서사장과 여직원을 합해 모두 2명뿐이었다.

이듬해인 85년 서사장은 물류비의 최소화를 위해 파렛트풀제도를 국내에
도입키로 결정, 한국파렛트풀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파렛트풀제도는 파렛트를 표준화시켜 상호교환 사용하는 물류공동화를
통해 각 기업의 물류비를 절감하는 공동이용제도이다.

미국은 50년대, 유럽과 일본은 각각 60년대와 70년대에 이미 일반화돼
물류비절감에 중추적 구실을 하고있다.

서사장은 우선 파렛트 5백매를 겨우 마련해 사업을 시작했다.

서사장은" 그당시 국내에서 물류라는 말조차도 생소한 시기였다"며
"그러나 물류가 중요시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86년과 87년의 매출은 6천3백만원과 7천만원.

창업한지 5년동안 이 사업은 국내업체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

서사장은 이때 대그룹의 안정적인 과장자리를 내던지고 나온 자신에
대해 더할 수 없는 회의를 느꼈다.

하루에도 몇번씩 회사문을 닫을 생각을 했다.

점심값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했던
것이다.

이때 사면초가에 몰린 서사장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왔다.

일본파렛트렌탈의 사까이겐지사장이 우선 파렛트10만매를 지원해줄테니
좌절하지 말고 해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88년 몰아닥친 인건비의 급상승과 3D현상의 여파로 파렛트풀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90년대 들어 서사장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93년 매출 80억원을 기록한데 이어 94년에는 매출 1백15억원을 올려
창업이래 최초로 2억8천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제는 모두2백여명의 직원에 1백30만매의 파렛트를 보유할 정도로
탄탄한 사업기반을 다졌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파렛트를 연결하면 서울과 부산을4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이다.

전국각지에 12개의 영업소와 20개의 집배소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현대자동차 태평양 크라운제과등 9천개의 업체가 파렛트풀을 이용하고
있다.

내년중에는 가입업체수가 1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서사장은 "발송지에서 사용한 파렛트를 최종도착지까지 일관사용하는
파렛트풀을 도입하면 총 물류비의 5%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가전체로 볼때 연간 2조원의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지난 11월 건설교통부로부터 물류표준화부문에서 우수업체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은 서사장은 "파렛트풀의 정착을 위해서는 포장치수의 표준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