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해년도 끝이 보인다.

돌아보면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사연이 많은
한해가 기억될 것같다.

언론사마다 선정하는 10대 국내외 뉴스만 보더라도 숨가쁘게 달려온 한해
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세상사란 크게 보면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지만 호사라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비록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몇번 겪었지만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현장에는 눈물겹도록 헌신적인 구조대와 자원봉사자가 있어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근간의 실체와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더우기 9%대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총수출액 1천억불돌파및 국민소득 만불
시대 개막은 개혁과 세계화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리라 본다.

특히 우리는 여전히 역동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우리 사회도
이제는 뿌리가 튼실하여 다소의 충격 정도는 능히 소화할 수 있는 다원화된
체제로 자리매김하는 것같아 희망적이다.

이제 몇일이 지나면 우리는 병자연 새해를 맞이할 것이다.

연륜을 쌓는다는 것은 지혜의 주머니를 늘린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만불시대를 열고
사회적으로는 가치체계의 다원화가 이루어지는 요즈음 새해부터는 더 성숙한
사회를 가꾸자는 의미에서 가진 사람이 베푼 사회분위기를 조성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든, 지위든, 재물이든 가진 것이 있게 마련인데 아마
나눔과 베푸는 삶이 부족했던 이유는 앞만 보며 달려와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지 근본탓은 아닐 것이다.

어디 삶이 자신의 당대에 끝나는 것인가.

자자손손 이어질진데 나의 작은 노력으로 살맛나는 세상을 후손에 물려줄
수 있다면 보람된 일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