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TI사와 특허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은 기술에 관한 한
정상에 서있다는 자신감의 표시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는 마당에 외국업체들이 무리하게
휘두르는 특허공세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 그동안은 후발주자로서 늘 특허공세에 시달리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할말은 하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강공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정상"으로서의 권위를 지키고 또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것.

삼성의 전략은 "앞으로 빌려온 기술은 기술로 갚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TI를 제소한 것도 이같은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과 TI는 지난 1년간 특허사용에 대한 재협상을 벌였다.

삼성이 반도체 분야에 처음 진출하면서 차용해온 D램 제조기술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다.

삼성이 내민 카드는 크로스 라이선스.로열티 대신 기술로 댓가를
지불하겠다고 주장한 것.

반면 TI는 로열티의 인상을 요구했다.

이 결과 협상은 결렬되고 양사는 각각 특허침해 혐의로 상대방을
제소했다.

과거 같았으면 TI가 제소하고 삼성은 "고개를 숙이고" 협상에 응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엔 삼성이 먼저 13건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한 혐의로
TI를 법정에 고발했다.

삼성 관계자는 "법정분쟁으로 이어진 기술은 TI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D램과 마이크로프로세서등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TI가 다시 협상하자고 제안해 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 경우 다시 크로스 라이선스 카드를 내민다는 전략이다.

국면의 주도권을 잡아 결코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삼성의 이같은 자신감은 기술자산에서 나온다.

이는 해마다 늘어나는 미국 특허등록건수에서 잘 알 수 있다.

삼성의 지난해 미국 특허등록건수는 4백40건이다.

전 세계 기업중 미국에 등록한 특허건수로 23위에 올랐다.

독일 지멘스나 미국 GM보다도 많다.

지난 90년의 66건보다는 무려 7배 가까이 늘었다.

기술로 시비를 걸어오면 곧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많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삼성의 기술자산은 이미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만도 10건의 대형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일본 도시바나 NEC 등과 기술을 서로 주고 받기로 한 것이다.

메모리 기술을 주고 비메모리기술을 받는 식이다.

과거 거의 구걸하다 시피해 기술을 도입하던 것에서 정당한 거래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삼성이 이처럼 정공법을 택한 것은 "메모리 반도체 1위"로서의 위치를
다지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일본이나 미국업체들의 견제가 날로 강도를 더해가고 있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발주자로서 기본특허가 없는 삼성이 기술 트래이드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