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파드국왕, 압둘라에 국정 이양..국제유가 향배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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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리비아의 파드국왕(73)이 신병치료차 1일 압둘라 왕세자에게
국정을 이양함에 따라 전세계가 국제유가의 동향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석유생산의 10%를 차지하는 최대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8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 그 중 700만배럴을 수출한다.
때문에 이 나라의 정정변화는 그동안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사우디의 왕위 승계문제가 표면화 된 것은 파드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난해 11월부터였다.
국왕의 친동생 6명과 이복동생인 압둘라왕세자중에 누가 후계자로 지명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병상의 파드국왕은 결국 왕위는 자신이 고수하되 압둘라왕세자에게 국정을
이양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로써 압둘라왕세자는 왕위서열 승계1위로 낙점됐다.
석유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이같은 정정 변화와 관련,유가가 소폭 오를
것이라는 측과 아무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측으로 나뉘어 있다.
UBS사의 석유분석가 게오프 피네는 "유가가 올라갈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로 권력이양 소식이 발표된 다음날인 2일 국제유가는 오름세를 탔다.
대표적인 중동산 유종인 두바이유는 직전거래일 보다 배럴당 43센트 올라
17.39달러로 마감됐고 브렌트유도 배럴당 29센트 상승한 18.62달러를 기록
했다.
국제석유상들에게 압둘라왕세자는 온건한 파드국왕보다 강경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정책이 지난 20여년간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끼쳐온 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3년 제1차석유파동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는 대미석유 금수조치 등에
앞장서며 유가앙등에 앞장섰다.
국제석유상들은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회담 직전에는 사우디의 움직임
을 예의주시하면서 대개 석유출하를 중단, 유가인상을 부추겨 왔다.
80년대 중반들어서도 사우디 석유상의 움직임에 따라 유가가 춤을 줬다.
당시 사우디가 석유정책을 돌변, 시장점유율 확대방침을 정하자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폭락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유가안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걸프전 발발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선으로 치솟자 파드국왕은 30%
증산, 인상의 불을 잠재우기도 했다.
재위12년의 파드국왕에 대한 신뢰도가 컸던 만큼, 이번 국정이양은 그만큼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종류의 OPEC산 유가 평균치가 15.53달러(94년)에서 16.86달러(95년)
로 반등했음에도 알리 알 누아이미석유장관은 최근 유가가 여전히 "너무
낮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계심많은 석유상들은 국정이양으로 사우디의 석유정책이 변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운영권을 넘겨받은 압둘라왕세자는 첫 조치로 금년도 국가예산
지출을 승인하면서 파드왕이 다짐한 예산지출 합리화정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압둘라왕세자가 파드국왕정책을 거의 그대로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관측을 불러오며 석유정책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잔을 들어 유가의 소폭 반등세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사우디의 체제가 안정돼 있기 때문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석유생산을
감축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근거로 석유수입 예산이 이미 국가예산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우디가 1인 전제국가가 아니며 국정이 앞으로 세자들간의 합의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는데서도 석유정책의 돌변사태는 없을 것이라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 유산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4일자).
국정을 이양함에 따라 전세계가 국제유가의 동향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석유생산의 10%를 차지하는 최대의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8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 그 중 700만배럴을 수출한다.
때문에 이 나라의 정정변화는 그동안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사우디의 왕위 승계문제가 표면화 된 것은 파드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난해 11월부터였다.
국왕의 친동생 6명과 이복동생인 압둘라왕세자중에 누가 후계자로 지명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병상의 파드국왕은 결국 왕위는 자신이 고수하되 압둘라왕세자에게 국정을
이양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로써 압둘라왕세자는 왕위서열 승계1위로 낙점됐다.
석유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이같은 정정 변화와 관련,유가가 소폭 오를
것이라는 측과 아무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측으로 나뉘어 있다.
UBS사의 석유분석가 게오프 피네는 "유가가 올라갈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로 권력이양 소식이 발표된 다음날인 2일 국제유가는 오름세를 탔다.
대표적인 중동산 유종인 두바이유는 직전거래일 보다 배럴당 43센트 올라
17.39달러로 마감됐고 브렌트유도 배럴당 29센트 상승한 18.62달러를 기록
했다.
국제석유상들에게 압둘라왕세자는 온건한 파드국왕보다 강경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정책이 지난 20여년간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끼쳐온 점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3년 제1차석유파동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는 대미석유 금수조치 등에
앞장서며 유가앙등에 앞장섰다.
국제석유상들은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회담 직전에는 사우디의 움직임
을 예의주시하면서 대개 석유출하를 중단, 유가인상을 부추겨 왔다.
80년대 중반들어서도 사우디 석유상의 움직임에 따라 유가가 춤을 줬다.
당시 사우디가 석유정책을 돌변, 시장점유율 확대방침을 정하자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이하로 폭락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유가안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걸프전 발발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40달러선으로 치솟자 파드국왕은 30%
증산, 인상의 불을 잠재우기도 했다.
재위12년의 파드국왕에 대한 신뢰도가 컸던 만큼, 이번 국정이양은 그만큼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종류의 OPEC산 유가 평균치가 15.53달러(94년)에서 16.86달러(95년)
로 반등했음에도 알리 알 누아이미석유장관은 최근 유가가 여전히 "너무
낮다"고 말했다.
때문에 경계심많은 석유상들은 국정이양으로 사우디의 석유정책이 변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운영권을 넘겨받은 압둘라왕세자는 첫 조치로 금년도 국가예산
지출을 승인하면서 파드왕이 다짐한 예산지출 합리화정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압둘라왕세자가 파드국왕정책을 거의 그대로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관측을 불러오며 석유정책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잔을 들어 유가의 소폭 반등세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사우디의 체제가 안정돼 있기 때문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석유생산을
감축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근거로 석유수입 예산이 이미 국가예산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우디가 1인 전제국가가 아니며 국정이 앞으로 세자들간의 합의로
운영될 공산이 크다는데서도 석유정책의 돌변사태는 없을 것이라는게 이들의
분석이다.
< 유산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