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다는 거야? 나무랄 게있으면 드러내 놓고
말해봐. 그렇게 빙빙 돌려 이야기하지 말고"

보옥이 습인을 노려보다시피 하며 언성을 높였다.

"도련님은 그걸 정말 모르세요?"

"몰라"

"잘 아시면서, 제가 직접 말하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보옥과 습인이 대부인의 방으로 건너가 바바을 먹는등 마는등 하고
다시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보옥이 방으로 들어가면서 보니 바깥방 그들에 습인이 아까처럼
누워 있고 그 옆에서 사월이 골패를 만지작거리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보옥이 돌아온 기척을 느껴도 습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월이 습인의 태도에 당황해 하며 골패를 밀어두고 조르르 달려나와
보옥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보옥은 사월이 습인과 단짝인 것을 아는지라 사월에게도 버럭
화를 내었다.

"누가 상전인지 모르겠군. 내가 어떻게 감히 너희들을 부리겠어? 차라리
내가 혼자서 모든 걸 알아서 해야지. 사월이 너도 필요없어"

보옥이 손을 내저어 사월을 내보내었다.

사월은 자기 머리를 빗겨주던 보옥의 손길을 떠올리면서, 도련님도
참 변덕스럽군, 하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니, 왜 나와? 도련님 차를 안 마신대?"

습인이 몸을 반쯤 일으키며 사월에게 물었다.

"나도 필요없대요.

습인 언니랑 도련님 신경전에 이 애매한 사월이 등만 터진다니까"

사월이 풀썩 주저앉으며 다시 골패를 도 손으로 쓸어 모았다.

"우리는 필요없다고 하니까 요사이 온 그 견습시녀들 들여보낼까? 아마
도련님도 아직은 그애들을 보지 못했을걸.

도련님은 새로 온 애들 좋아하니까 혹시 마음이 풀릴지 모르지"

습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사월의 동의를 구했다.

이심전심이라 사월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옥이 누워서 책을 보다가 문득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처음 보는
시녀 둘이 들어와 마루바닥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둘 중에 키가 약간 크고 나이가 많은 듯한 애가 다른 애에 비해 반반해
보였다.

보옥이 그 시녀에게 이름을 물으니 혜향이라고 했다.

보옥은 혜향이라는 이름이 너무 화려하기만 하다면서 사아라고 이름을
고쳐주었다.

네 남매 중 막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이름을 지어준 것이었다.

보옥은 사아에게 호감을 가지고 차를 따르도록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