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

문학의 해가 밝았다.

문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 하나는 삶과 취향의 품위 복원이다.

우리 모두에게 겸허한 자기성찰이 요구되는 때에 문학의해가 마련된 것은
뜻깊다.

서기원 문학의해조직위원장(66)을 경기도 고양시 성석동 농가에서 만나
문학과 우리 삶의 제자리찾기를 위한 각종 행사내용및 준비과정을 들어봤다.

소설가인 서위원장은 서울신문과 KBS사장을 지낸뒤 성석동 농가를 개축한
자택에서 신문연재소설을 쓰며 조선조 역사바로잡기에 힘쓰던중 중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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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박성희 < 문화부장 > ]]]

-문학의해 사업계획중 근대문학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올해로 얼추 한국근대문학 탄생 1백년이 됩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학생들에게 우리 문학의 자취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전시공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문인들이 모여 세미나나 토론회를 열거나 자연스레 만나 의견을 교환할
장소도 없고요.

집필실과 문인사랑방 구실을 할 건물이 필요합니다.

바둑만 해도 한국기원이 있고 다른 분야도 자체 회관들을 갖고 있잖아요.

문제는 부지를 구하는 일인데 정부와 서울시의 협조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체부로서도 이왕 시작한 잔치, 제대로 도와줘야 빛이 나겠지요.

문학의 해와 관련한 정부의 배려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번역원은 어떻게 설립되는지요.

실제로 우리문학의 해외진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번역문제가 심각한데요.

"한국문학의 해외진출을 위한 전략수립과 번역 활성화를 일차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내국인뿐만아니라 한국문학번역을 책임질 외국인을 초청해서 그들이 마음
놓고 일할수 있도록 지원하는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몇년씩 그냥 먹여 살려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효과를 볼수 있는 것이 번역사업입니다.

기금을 마련, 해외의 한국학연구자들을 유치해 장학금과 생활비를 주어
전문번역가로 양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체부의 기존사업과 연계해서 추진하는 방안도 강구중입니다"

-해외에서 출간되는 우리문학작품이 실제로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읽히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널리 알려져야 가치를 발휘하죠.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의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번역한 외국인의
노력에 의해 많이 알려져 노벨상을 받았지요.

최근들어 해외에서 우리 문학작품을 출간하고 있지만 대부분 공공도서관
이나 대학출판부등에서 문예진흥원등 국내기관의 지원을 받아 내는 경우라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상업출판사들이 관심을 갖고 우리 작품을 출판할수 있도록 해야
할때죠.

그러자면 작품 자체가 상업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글과 말맛을 최대한 살릴수 있는 전문번역가의 양성이 무엇보다
절실해요.

다행히 정부예산이 연차적으로 집행되고 기금도 마련된다니 이 작업이
승수효과를 거둘수 있게 잘 운영해야죠.

한마디로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일만으로도 먹고 살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가능해집니다"

-해외의 한국문인들을 초청, 한민족문학인대회를 개최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우선 북한문인들을 초청할 계획입니다.

남북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민족문학의 방향을 논의하고 단절됐던
문학사를 복원하는 일은 어쩌면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지요.

얼마전 정년퇴임한 연세대학의 이선영교수가 그쪽에 관한 자료를 상당히
많이 모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교수는 문학평론쪽에서 활동하는 한편으로 그간 북한문학관련 자료를
꾸준히 모아 왔다고 합니다.

언젠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던 거겠지요.

"아마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될 겁니다.

이번 한민족문학인대회는 국내외에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 모두가
한곳에 모여 문학을 통한 민족의 동질성회복과 한민족의 문학적 지표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중국 연변지역의 문인들과는 그동안 여러 경로로 교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북한과 함께 미국 일본 호주등 세계각지의 한국문인이 모두 참가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자칫하면 이름만 요란한 행사가 될 우려가 없지 않은데요.

초청작가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라도 생기면 모처럼 좋은 뜻이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부분은 제가 직접 나서서 좀 챙겨보려고 합니다.

원래 뒷말이란게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세심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물론 지역적 특색이나 관습의 차이에서 오는 편차야 어쩔수 없겠지만
앞으로 전개될 통일문학에 대한 전망을 유추해 보는 자리인만큼 화합에
주안점을 둘 것입니다.

또한 한민족 작가 전체의 이름으로 통일문학선언을 채택할 계획입니다"

-근대문학 1백년 CD롬은 어떻게 제작할 생각이신지요.

자료도 방대하고 기술적인 문제도 복잡할텐데.

"월북작가의 작품등 근대문학이후의 모든 자료를 다 넣어 영구보존용으로
제작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작업은 시행사업체를 선정할 추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서 진행
시킬 생각입니다.

기업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인 방법론을 찾아 나갈 작정입니다.

제작상의 문제등 문학외적인 요소로 인해 자료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기본지침을 분명히 정할 겁니다"

-그간 국악 무용 미술의 해를 진행하면서 지역예술인과의 화합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문인들을 위한 행사로는 어떤 걸 추진하고 계신지요.

"지역문학의 활성화는 곧 한국문학의 활성화와 통하는 얘기죠.

중앙의 문인들이 대거 지방을 방문하고 그 지방의 문인및 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한편 모든 계층이 동참하는 한마당축제가 되도록 꾸밀 계획
입니다.

근로자들이 밀접해 있는 주요공단 부근이라든지, 학교 문예회관등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에서 작가와 독자가 하나되는 잔치를 마련하는 거죠.

우선 5회에 걸쳐 문인들의 지방방문을 실시하고 지역별로 문인들과 현지
기업의 협조를 받아 독자의 창작품을 사전 접수 심사하는 등 문학대중화에
힘쓸 작정입니다"

-가시적인 사업중에 들어있는 문학100년탑 건설은 무엇인가요.

"거창하게 만들자는 건 아니고 단지 근대문학 100년을 기념하는 상징적
의미로 세우자는 거죠.

대외과시용 행사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거울"같은 개념으로 만드는 겁니다"

-눈에 띄는 것 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사업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세부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고 기획단계에 있는 것도
많습니다.

단 모두가 "참여하는 잔치"로서의 마당만들기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작품의 무대가 된 지역을 찾아 그와 관련된 문학지도를 제작, 관광산업과
연계시킨다든지 작가의 활동지역을 유적지로 지정하는등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하는 사업들도 많구요"

-그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생각됩니다.

외국의 경우 실제로 가보면 아무 것도 없는 곳까지 예술유적지로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렇지요.

이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환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밖에 작고.원로문인 육필전시회와 문인종합예술제, 국제시낭송대회,
동인지콘테스트, 장애작가문학행사, 문인과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문학
캠프, 한국문학인명록 발간, 국제세미나, 문학통신망 설치등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또 국민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기 위해 방송사와 제휴, 문학
작품의 내용및 문학기행등을 담은 "TV한국문학전집"을 제작방영토록 할
계획입니다"

-어느 행사나 예산이 문제인데요.

현재 확보된 액수는 얼마나 되나요.

"우선은 정부예산 10억원이 있습니다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번역원설립은 정부가 연차사업으로 지원할 사업이니까 당장 예산을 쓰는
것은 아니고 근대문학관 건립도 어차피 정부에서 부지를 제공해 줘야 하므로
자체부담이 덜한데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민간차원의 도움을 요청해야죠.

한민족문학인대회가 의외로 돈이 많이 들지 모르지만 북한문인들이 오게
되면 의미도 커질테니까 가치있는 일에 투자할 사람이나 기업을 찾아
봐야죠"

-큰일을 하다보면 관련된 사람들간의 갈등이나 반목이 생길 수도 있는데요.

벌써 민족문학작가회의쪽에서 행사 참여를 거부하고 있죠.

"그렇잖아도 작가회의측과 접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정히 함께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별도행사를 갖겠다면 거기에 대해서도
지원할 생각입니다.

문인협회회원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단체별 시이소게임도 아니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좋은 모양새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취지니까 모두가 함께 하자는 거죠.

지금도 문열어 놓고 계속 설득중입니다.

지난번 상임위원회도 연기했어요.

한사람이라도 더 참여하도록 하자는 노력이지요.

작가회의가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면 내가 위원장을 맡지도
않았을 거에요"

-가시적 행사도 중요하지만 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동기부여
에도 힘써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문학이 당면한 과제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매체시대의 홍수속에서 문학이 설자리를 잃어간다는 것이고
둘째는 문학의 지나친 상품화죠.

상업주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학적 가치를 제쳐놓고
한탕주의식 돈벌이에만 치중하다보면 문학의 저질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죠.

셋째는 한국문학의 국제화, 세계화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영상산업의 팽창이 문학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본없는 영상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동감입니다.

문학이 다른 매체에 밀리는 현상은 피할수 없는 일이지만 이는 활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영역을 넓힐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하죠.

쓰지 않고 보여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시집이 많이 나오고 팔리는 나라도
드물어요.

일본의 경우 기껏해야 5,000부정도를 찍는데 그것도 대부분 자비출판이죠.

다른 나라도 그렇고.

그나마 한국의 문학출판은 그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활발한 수준입니다"

-"상업성"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렸다고 봐야겠죠.

"상품화현상보다 상품가치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달리 이제 문단도 넓어졌고 독자들의 감각도 달라졌지요.

중요한 건 젊은 독자층을 많이 키워야 합니다.

저변확대가 별것 아니니까요"

-흔히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는
꼭 그렇게 볼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죠.

보편적 주제와 미의식을 탐구해야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요.

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도 반핵.반전문제를 자주 다루며
보편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상을 받게 됐죠.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백남준 김환기 윤이상씨등도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
으로 하고 있지만 소재주의에 빠지지는 않았어요.

세계적인 것이 세계적이지요.

지나친 문화국수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문학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개인용컴퓨터 보급이 확산되면서 가볍고 긴 글이 양산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자료동원등이 편리하니까 쉽게 쓰는 글에 대해 유혹을 느끼는 건 당연할
겁니다.

문제는 분별력의 차이지요.

좋은 글은 좋은 독자를 만나게 돼 있거든요.

(서기원위원장은 5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주요작품으로 "암사지도"
"여자의 다리" "마록열전" "조선백자 마리아상" "왕조의 제단"등이 있다.

동인문학상(61)과 한국문학상(75)을 수상했으며 현재 일간신문 두곳에
소설 "광화문"과 "징비록"을 연재하고 있다.)

< 정리=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