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학평론가 서영채씨(35)가 첫비평집 "소설의 운명"(문학동네간)을
내놓았다.

"비평이란 "독서의 안내자"역할을 충실히 하는거죠." 이렇게 읽으면
재미있다, 이런 쪽에서 접근하니까 더 잘 보이더라"고 내가 읽은 독후감을
다른 사람에게 소곤거리며 들려주는 일 말이에요"

안팎으로 고단했던 80년대에 시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가 "시보다 더
아름다운 산문이 많아서" 평론을 택했다는 그는 "권위있는 판관의 자리보다
작품이라는 숲의 지도를 그리는 서기의 자리가 훨씬 탐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보는 90년대는 "고약한 존재론의 시대"이다.

이념의 진공상태에서 유토피아를 향한 길찾기가 방향을 잃었기 때문.

"무엇을" "어떻게"보다 "왜"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도처에 늪과 함정이다.

그는 우리시대 장편소설의 세가지 형식을 환멸, 환상, 모험으로 분석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근대성이 마련해놓은 허무주의와 마주할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상품미학의 "경쾌하고 화려한 허무주의"와 우울한 염세주의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 소설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문학과 예술은 바로 그 허무주의에 맞서기 위한 정신의 거점이어야
합니다.

상품미학의 지배를 피할수 없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욱 강력하게
저항하고 또 그안으로 잠입해 파괴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야죠"

그래서 그는 장정일과 윤대녕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상상력으로 "부정의 변증법"을 보여주면서 자기를 헐값에 팔지
않고 고집스레 자존심을 지켜가는 삶이 마음에 든다는 것.

서씨는 61년 전남목포태생으로 서울대국문과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90년 시집 "태풍"을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92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장미의 이름읽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