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인 최지숙씨(32.서울마포구염리동)는 연초에 중대 결단을 내렸다.

대학전공을 살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

최씨가 과외전선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은 남편의 쥐꼬리같은 봉급만
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데다 연말에 무전의 설뭄을
톡톡히 맛봤기 때문.

남편의 자동차가 7년이 지난 "고물카"로 주변에서 어지간하면 차좀
바꾸라는 말을 듣는 마당에 연말 자동차 3사들이 무이자할부판매기간에도
차마 차를 바꿀 수가 없었다.

내년이면 다섯살바기 큰 아이 유치원보내야 하고 6월엔 전세비를
올려한다.

또 7월로 날잡힌 친정여동생 결혼비용도 보태야 하는등 돈쓸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2월에 3백만원어치 사들인 주식은 현재 50%나 손해를
보고 있어 최씨로서는 집에서 가정생활에만 전념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

낮에는 가사에 매달리고 주말이나 저녁시간을 이용,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가르치는 등 부수입전선에 나서는 겸업주부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생계를 책임지며 가장역할을 하는 주부들이 부업전선에
뛰어들던 과거와 달리 남편이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부업에
나섰다는 것.

전문대 강사인 이모씨(32)는 지난해부터 중.고생을 대상으로 과외를
가르치고 있다.

현재 K대학에서 박사코스를 밟고 있는 그녀는 남편이 국내 굴지의 S그룹
중견영업사원임에도 빠듯한 강사료와 남편의 실팍한 봉급으로는 학비조달은
물론 가계를 꾸리기도 힘에 벅차 과외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

그녀가 3팀의 과외를 가르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평균 1백50만원.

이러다보니 두아이에 대한 교육등 가정생활의 절반은 자연 친정어머니의
몫이 되버렸다.

남편이 중소기업의 부장인 주부 심모씨(38.동작구상도동)도 올들어
이화여대앞 의류상점에서 판매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이 문제로 요사이
남편과 조그만 마찰을 빚고있다.

1주일에 3일식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상점을 지키며 의류를 판매해주고
월 50만원을 받기로 했다.

문제는 이 상점의 주인이 남편의 친구라는 것.

심씨는 남편이 몹시도 자존심 상해하고 마음 아파한다며 남편의 마음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애들 과외시키고 최소한 적자가계를 꾸리지 않으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남편이 연초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선 "여보 당신이 옷가게
하나 차려.내가 도와줄테니까. 당산한테 면목도 없고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하더군요.

남편은 다음날 깨서는 무슨말을 했는 지도 모르지만 여러가지로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아요"

심씨의 한숨 섞인 토로는 겸업주부의 고단함이 그대로 배어있다.

이들 겸업전선에 뛰어든 주부들은 사실 직장에 다니는 주부에 비해 훨씬
고달프다.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사노동의 양은 부업을 갖기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도 없다.

또 자녀 건강문제 시댁 행사등 가정생활에서 책임져야할 부분은 직장주부에
비해 훨씬 많으면서도 이들에 비해 빛도 나지않고 몫돈을 버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방형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