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진대제부사장.

국내 반도체 업계를 이끌어나가는 몇 안되는 인물중 하나다.

그는 최근 그룹 정기인사에서 "진대제 뛰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올해 43세.87년 이사보로 선임된 이후 8년만의 부사장 승진.

말그대로 "잘 나가는" 임원이다.

발탁인사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경영성과가 필수적이다.

진부사장의 초고속 승진도 따지고 보면 반도체부문의 탁월한 경영실적이
반영된 것.

진로계열사인 진로저팬의 김태훈 대표이사 전무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사에서 전무로 두 단계를 훌쩍 뛰었다.

김전무는 일본시장 진출 1년만에 86개 희석식 소주업체 가운데 진로를
5위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번 정기인사에서 뚜렷이 드러난 특징중 하나는 기술 연구 영업 등
특정분야 전문인력들의 "약진"이다.

현대 삼성 LG등 거의 모든 그룹에서 전문직 임원들이 대거 승진했다.

연공서열보다는 "능력"과 "실적"이 중요시되는 최근 인사 풍토가
빚어낸 자연스런 현상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기에는 아무래도 기술직이나 연구직이 유리하기
때문.

이는 또 현장중시 경영풍토가 국내기업에 확연히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LG전자 정일만 이사대우는 기술직으로 입사해 줄곧 제품 설계분야에서만
일해온 설계분야 베테랑.

부산 동성고를 졸업한 고졸학력자다.

이병태 LG그룹 항공운항팀장은 그룹 임원들이 출장을 갈때 주로
헬기를 운전하는 헬기기장.

그룹내 특수직중 최초로 "별"을 달았다.

현대그룹 인사에서 최연소로 승진한 전자의 오춘식 이사대우는
57년생.

올해 39세다.

부장에 오른지 1년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역시 반도체 생산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기술직 임원이다.

이밖에 전자의 김영복 현일선, 석유화학의 한수범이사 등도 모두
기술직이거나 연구직이다.

삼성그룹내에서 새로 임원이 된 2백50명중 30대 이사는 모두 11명.

이들 모두가 전문직 임원이다.

전자의 반도체메모리설계 담당 임형규전무와 컴퓨터 담당 박노병전무도
상무 승진 1년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특정분야의 전문임원들도 다수 배출됐다.

제일기획의 구연철이사대우는 지난 93년부터 "구연철 팀"을 맡고 있는
광고전문가.

런던페스티벌에 입상하고 세계적인 광고상인 크리오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데이터시스템의 주혜경이사대우는 소프트웨어 개발전문가이고
삼성화재 장선희이사대우는 관악지점장을 지낸 손해보험 법인 영업
전문가다.

특정분야 전문가들이 대접받는 추세는 최근 2~3년간 두드러진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간호사 임원을 배출했고 삼성그룹에선 호텔신라
주방장을 이사로 승진시켰다.

홍보 전문요원들의 대거 승진도 이의 연장선이다.

대우그룹은 그룹 홍보실의 김욱한부사장을 대우기전 사장으로,
서재경.김윤식상무를 전무로, 백기승부장을 이사부장로 각각 승진시켰다.

삼성그룹 홍보팀의 이의일상무는 전무로 올라섰고 쌍용그룹은
김동현홍보이사를 상무로 발탁했다.

삼성항공과 삼성자동차에서도 홍보담당 임원이 새로 탄생했다.

비자금 파문이라는 돌출변수가 있긴 했지만 홍보분야 역시 엄연한
전문직종으로 자리잡았다는 반증이다.

기업들이 전문직종 임원을 <>전문임원 <>연구임원등으로 구분해
이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것도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기술이나 연구.영업 등 특정분야 임원의 전성시대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