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프리만 <동남아학회 연구원>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가입등으로 눈부신
외교성과를 거두고 있는 베트남은 최근 한국과도 깊은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특히 양국간 경제교류가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은
이제 한국의 발전 모델 배우기에 착수했다.

역사적으로 볼때 이같은 양국간 유대관계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한국은 지난65~75년 월남전동안 미동맹국으로는 가장 많은 30만명을
파병했다.

전사자만도 5,000명에 달했다.

월남패망이후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는 지난 8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면서 해빙무드에 접어들어 92년에는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보반키에트 베트남총리가 93년5월 한국을 방문했고 그 이듬해
한국 이영덕총리의 답방이 이어졌다.

그이후 양국간 외교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경제분야에서 양국간 총 교역량은 94년 11억4,000만달러에 이르렀으며
앞으로도 연간 30%씩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의 대베트남 투자 프로젝트는 123건.

액수기준으로도 14억달러를 넘어서 대만 홍콩 일본 싱가포르에 이은 5위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지난 두달간만 보더라도 LG그룹이 하이퐁에 2,300만달러를 들여
전선합작공장을 세우기로 했으며 대우그룹은 하노이에 1억3,600만달러짜리
운수회사, 12억달러짜리 공업단지등을 건설할 계획이다.

대우는 이미 총 5억2,000만달러(12개프로젝트)를 베트남에 쏟아부었으며
오는 2000년까지 2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또 현대도 1억달러 상당의 합작조선소 건설사업을 추진, 현재 장소를
물색중이다.

지난 82년 한국기업으로는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은 현재까지
베트남에 총 4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도 철강및 호텔건설업등 4개 투자사업을 베트남에 벌여놓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이같은 베트남 투자붐은 원가절감을 위한 생산시설
해외이전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베트남은 저임에다 거대한 내수시장, 지역적 근접성등 한국기업들의
입맛에 맞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베트남으로서도 한국기업의 투자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우선 한국기업들은 자금에 목마른 자국의 산업부문에 오아시스가
돼주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투자를 꺼려하는 주요 프로젝트도 한국기업 덕분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또 베트남의 주요 인력수출대상국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베트남은 연간 10만명의 노동자를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며 이가운데
상당수가 한국과 일본으로 흡수될 것이다.

최근에는 베트남이 한국식 발전모델을 모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주요 산업부문에서 일부 국영기업을 집중 육성키로
했다.

일부전문가들은 이런 베트남의 정책이 한국식 모델을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또 베트남의 주식시장 설립을 위해 100만달러 상당의
기술지원프로그램을 제공키로 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지금까지 여러나라의 모델을 섭렵한뒤 베트남 실정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형시켜 자국의 정책에 반영해왔다.

따라서 베트남이 한국형 모델을 그대로 배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욱이 양국간 관계는 앞으로도 발전을 거듭해가며 다양한 분야로
확대돼 나갈 것이다.

다시말해 양국 관계의 앞날이 탄탄대로이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예컨대 한국기업들의 베트남 노동자 학대를 들수 있다.

베트남 언론에는 한국기업의 베트남 노동자 가혹사건이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며 현지인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 한국을 성공적인 발전모델로 주목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본사/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제휴>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