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대형빌딩엔 어김없이 은행 지점이 들어서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금융계는 치열하게 지점 늘리기 경쟁을 벌였다.

90년대 중반이후 이같은 양상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금융업에 정보기술(IT)이 접목됨에 따라 지점 확충 경쟁은 시들해지고
말았다.

심지어 21세기엔 지점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지점은 소매금융의 창구.낮은 금리로 "푼돈"을 끌어모아 가계나 기업에
높은 금리로 빌려줌으로써 이익을 실현하는 현장이다.

80년대말 미국에서는 저축기관을 비롯한 소매금융계가 경영난에 빠졌다.

막대한 돈을 들여 지점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놓았는데 고객들이 직접금융
시장으로 속속 이탈하고 예대마진이 작아졌기 때문이었다.

90년대 중반께부터 소매금융계는 활력을 되찾고 있다.

재미있게도 새로운 힘의 원천은 이익실현의 현장인 지점이 축소되고 있는데
기인한다.

종래 지점에서 텔러(출납담당)가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함에 따라 거래
비용이 줄어 작은 마진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컨설팅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텔러를 통한 거래비용은 평균
1.07달러인 반면 전화금융거래의 경우엔 0.36달러, ATM을 이용할 경우엔
4분의1 수준인 0.27달러에 불과하다.

대체로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60% 남짓은 은행측에 전혀 이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텔러 업무를 컴퓨터가 대신하고 가정과 사무실의 PC가 지점 기능을
대체함에 따라 이 60% 고객도 이익의 원천으로 바뀌고 있다.

소매금융업체들은 ATM을 확충하는가 하면 전화거래라든지 홈뱅킹.펌뱅킹
등 전자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대열에서 뒤처지면 그다지 이익을 주지 않는 노인층 빈민층만 상대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시티뱅크의 경우 지난해 중반 ATM 전화금융 PC접속 등 모든 전자금융
서비스와 관련한 이용료를 폐지했다.

젊은 부유한 고객을 끌어들이고 고객들의 전자금융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독일 코메르즈방크는 작년 2월 콤디렉트라는 전자금융업체를 세웠다.

이 회사 종업원은 1백20명에 불과하나 고객은 2만3천명에 달한다.

콤디렉트는 2000년까지 종업원은 그대로 둔채 고객을 25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 후지은행에서는 현재 지점 고객의 9할이 자동코너에서 잔액조회
현금인출 자금이체 등을 하고 있다.

이 은행은 금년봄 TV전화를 통해 예금.연금상담.대출신청 등을 하는
멀티미디어뱅킹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전국 2백80개의 유인.무인점포를 통신망으로 연결할 예정이다.

또 스미토모은행은 작년 12월 PC뱅킹서비스를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바은행은 94년 전화금융서비스를 시작했다.

1년간 이용건수는 1만6천건.

파리바는 이 서비스에 비디오전화를 이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미국 금융조사업체인 언스트&영은 지점을 통한 거래 비율이 94년 61%에서
97년에는 44%로 떨어질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 이 기간중 ATM 보급대수는 2배로 늘고 PC.전화를 이용한 금융서비스는
6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계법인 델로트&투슈는 금세기말까지 미국에서 은행 지점의 절반이 사라져
40만명이 실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미국 금융계에 몰아친 은행 인수.합병(M&A) 바람도 이같은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M&A 계획을 밝힌 은행들은 한결같이 지점을 통폐합하고 지점근무인원을
줄임으로써 경비를 절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 사쿠라종합연구소의 한 간부는 "출납.결제업무나 상담업무가 줄면서
21세기 지점은 고객의 자산관리를 종합적으로 어드바이스하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고객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점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

산와은행의 경우 현재 하루 2천5백명인 지점방문고객이 수년내에 50명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은 끊임없이 "더 많은 서비스,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한다.

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금융계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고객이 언제 어디서든 PC로 각종 금융서비스를 받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