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배순훈대우전자회장은 신년 임원간담회를 소집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신규.전략사업 정도만 챙기는 CEO (Chief Executive Officer = 최고
경영책임자)다.

일상적인 회사경영은 COO (Chief Operating Officer = 최고집행책임자)인
사장에게 일임한다"

''CEO와 COO의 역할 분담''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이 선언은 배회장이 지난해 그룹경영체계 개편직후에도 한 말이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올라앉고 후임 대표이사 사장에 양재열부사장이
임명되자 이런 식으로 ''대표이사 동거체제''를 끌고 나가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CEO와 COO-.

미국 기업들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다.

뚜렷한 오너가 없이 ''대중 자본주의''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있는 미국의
IBM GM등 대기업들을 보면 잘 알 수있다.

경영이사회 의장을 맡는 회장이 곧 핵심인사권과 경영의사 결정권을 장악
하는 CEO, 그 밑의 실무 업무집행을 관장하는 사장은 COO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그렇지 않아 왔다.

오너회장이 CEO를 ''독점''하고 있을 뿐 각사의 회장이나 사장은 다같은
COO에 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배회장의 말은 기업규모가 커지고 국내외 사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형 원맨경영''에 서서히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
일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배회장의 신경영체제 구상은 대우그룹이 작년초 기획조정실
을 해체하고 ''각사 회장''제도를 도입한 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각사 회장이 과거의 관행을 깨고 임원 인사를 ''독립적으로''(지난달 각각
단행된 전자계열사군 자동차군 경영진 인사처럼) 실시할 수 있게 된 이상
그 자신이 명실공히 CEO가 될수 있다고 판단했다고나 할까.

삼성그룹이 그룹회장이 주재하는 사장단회의를 작년말 중단하고 소그룹별
''미니 사장단회의''로 대체한 것도 같은 방향의 경영혁명이었다.

예컨대 전자 소그룹은 김광호소그룹장(삼성전자 부회장)주재아래 전자/전관
/전기/코닝 등 관련 계열사의 대표이사들이 참석해 새해 사업-투자-매출등의
계획을 확정했다.

김부회장은 삼성전자내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CEO로 한정짓고 있다.

대신 반도체 부문은 이윤우사장, 가전 부문은 이해민대표이사 등이 경영
집행을 책임지는 COO로 자리잡고 있다.

무역-건설 소그룹을 이루고 있는 삼성물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총괄대표를 맡고 있는 이필곤부회장이 CEO이고, 무역부문의 신세길사장과
건설부문 최훈대표가 COO로 회사경영을 나눠 맡는 시스템이다.

3세 경영체제를 맞은 LG그룹도 전문경영인 CEO시스템을 조용한 가운데
뿌리내려가고 있다.

CU(사업문화단위)라는 독특한 소그룹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 그룹은
계열사 경영을 CU장들이 책임지도록 하는 체제로 돼 있다.

대신 그룹회장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에 걸쳐 CU장별로 돌아가며
''컨센서스 미팅''을 갖는 것으로 최소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그치고
있다.

CU장(CEO)은 그룹회장과의 컨센서스 미팅을 갖기에 앞서 산하 대표이사
(COO)들과 ''주니어 컨센서스 미팅''을 갖는다.

여기에서 걸러진 해당 CU의 한해 사업-투자계획을 그룹회장에게 브리핑
하는게 바로 컨센서스 미팅이다.

예컨대 LG가전/미디어CU장인 구자홍LG전자 사장은 해당 부문의 CEO, 전자
부품의 조희재사장과 소프트웨어의 이해승사장은 COO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이같은 CEO-COO역할분담 체제는 현대그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창업 1세인 정주영회장의 2세대들이 자동차.중공업.전자.정공 등 주력
계열사군을 나눠 책임경영(CEO)토록 하는 ''오너 분산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대목이다.

현대전자의 CEO는 정명예회장의 4남인 정몽헌회장(그룹부회장)이, COO는
전문경영인인 김주용사장이 나눠 맡고 있는게 대표적 예다.

한국 재계가 추진하고 있는 이같은 경영체제 변화의 기저에는 오너경영
색채의 탈색작업이 맞물려 흐르고 있다.

그룹 오너가 ''독점''하고 있던 CEO역할을 전문경영인 또는 권위적 색채가
옅은 2세 경영인들이 분점토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움직임은 그룹 총수의 세대교체나 분할 상속작업을 이미 끝냈거나
물밑 진행중인 선경 한진 코오롱 등 주요 대기업그룹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
될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전문경영인 CEO시대를 열어가고 있다지만 "아직 완전한
의미에서의 ''미국형 시스템''이 도입됐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김창진고려대 교수).

''CEO들의 CEO''라고 할 오너 그룹회장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명.정도경영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

사장이하 실무 부대는 행정부, 감사는 사법부, 회장은 입법부를 맡는
식으로 말이다.

경영의 3권분립은 기업경영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회장이
장기전략 구상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이토 전 일본 가네보회장의 말이 이같은 ''한국형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해답의 실마리가 될수 있다고 김교수는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현대그룹을 필두로 적극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사외이사
제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의 재계에 모색되고 있는 ''전문경영인 CEO.COO체제''가 경영의
3권분립시대로까지 이어질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 미국형 직능분화체제 ]]]

CEO(최고경영책임자)와 COO(최고집행책임자)는 다같이 미국기업의
톱 매니지먼트에 해당하는 직위다.

통계적으로는 ''CEO=회장, COO=사장''의 패턴이 가장 많다.

회장과 사장은 결정자 -> 집행자의 관계를 이룬다.

회장은 경영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최고권력자로 집행책임자인 사장의
임면권을 갖는다.

사장(COO)은 회장의 의사결정을 실천하는 계획.통제기능을 담당한다.

이처럼 미국기업에서는 회장과 사장의 직능이 명화 구분돼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전문경영인인 회장은 한낱 명예직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동성서울대 교수(경영학)는 "CEO.COO와 같은 전략적 의사결정자와
관리적 의사결정자라는 형태의 직능 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