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람들에게도 은근과 끈기는 있는것 같다.

미국사람들은 도대체 서두르는 법이 없다.

정부정책도 그렇고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도로공사를 하든 하수도공사를 하든 한번 파헤쳤다 하면 몇년을 끈다.

다지고 또 다지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니 그만큼 후회가 적다.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균형예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균형예산을 둘러싸고 의회와 행정부가 대립하면서 두 차례나 연방정부의
행정기능이 마비되는 불상사를 겪었다.

가까스로 행정기능이 정상화는 됐지만,균형예산의 줄다리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비롯된 균형예산문제와 관련 클린턴과 공화당
은 국민을 상대로 끊임없는 토론과 설득을 벌이고 있다.

여기저기서 여론조사를 실시, 공화 민주 양당을 압박하고 있기도 하다.

나빠진 여론을 의식한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11일 기자회견을 자청, 공화당
균형예산안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민주당의 비판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변
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등 의료보조기금과 복지혜택과 관련된 예산은 오히려
민주당보다 높게 책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겉만 보고 질타하지 말라고 여론에 호소했다.

깅그히치의 회견이 있자 클린턴대통령은 <깅그리치가 너무 과민해 있다>고
되받았다.

사실 공화당이 균형예산안을 강력하게 밀어 부치자, 사회적으로 약자계급인
여성과 중하류층은 클린턴의 지지로 돌아섰다.

그렇다고 공화당이 쉽게 물러설 기세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든 이를 관철시키겠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전의를 다지고 있기 때문
이다.

앞으로 균형예산 협상은 첩첩산중이다.

어떻게 결론이 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우선 3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 볼 수 있다.

우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양측이 협상에 실패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까지 몰고 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금융시장과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양당의 의견차이를 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공화당이 보수적인 민주당의원들을
끌어들여 또 다른 예산안을 만든 뒤, 대통령으로 부터 더 큰 양보를 받아
내는 것이다.

정부기관의 기능이 두 차례에 걸쳐 한달이상 이나 정지됐는데도 별다른
소요가 없다.

오히려 차분하다는 느낌이다.

우리 같으면 경제파탄이다, 정치력부재다 해서 난리가 났을 법도 한데
이렇게 큰 나라가 잘 굴러가고 있다.

은근과 끈기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