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규제 완화는 과연 어디까지 와있는가.

한국경제신문 자매지인 "한경 Business"가 제일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등 경제부처 1급이상 공무원과 국회 경제관련
상임위원회소속 국회의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는 행정규제
완화의 현주소를 명확히 말해준다.

조사대상 국회의원의 52.6%, 1급이상 고위 관료의 57.9%가 "규제완화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다.

얼마전 재정경제원과 KDI국민경제교육연구소가 "지난 93년3월 행정규제
완화위원회가 설치된 이후 규제완화대상 과제로 선정한 1,469건중 작년
9월말까지 1,373건이 관계법령개정 등으로 조치완료됐고 나머지 96건도
법령개정을 추진중에 있어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고 발표했던 것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규제완화 건수에 대한 정부발표가 전적으로 잘못됐다고
탓할 생각은 없다.

시각에 따라 "건수"를 과다하게 계산했을 수도 있겠지만, 정부 나름대로
기준과 근거를 갖고 몇건의 규제완화가 제도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발표했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도 아닌 고급관료들 자신이 규제완화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수 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부관계자들 자신의 평가가 이 정도이고 보면 규제를 당하는 쪽,
곧 기업관계자들의 평점이 더욱 박할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며칠전 나웅배 부총리겸 재경원장관과 경제 5단체장들이 만난 자리에서
재경원의 각종 금융규제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쏟아져나왔던 것도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왜 규제완화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가.

규제완화를 겨냥, 갖가지 법령 개정작업을 하고 있는 데도 이를 피부로
느낄수 없는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따지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법령개정등 제도적인
개선이 도무지 의미가 없는 경우가 실제로 존재하는 "비논리적인 현실"이
우선 문제다.

제철업의 신규참여를 규제하는 법령은 없지만 통상산업부는 여전히
"신규참여는 안된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지 않는가.

그뿐이 아니다.

석유화학업에 대한 신규참여는 지난 92년 이후 분명히 자유화됐으나
작년까지는 "투자지도"라는 행정지침을 통해, 올들어서는 업계 "자율조정"
이라는 형태로 법적 뒷받침없는 규제가 계속되고 있다.

업계에서 그래도 가장 나은 편이라는 평을 받는 통산부가 이 모양이고
보면 "규제의 본부"로 지칭되는 재경원의 행정규제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금리, 은행장 선출에서부터 증권시장에 이르기까지 명실공히 관제의 입김
에서 놓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게 관련기관 종사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규제는 곧 권한이고, 그게 없어지면 존재가치가 없어진다고 믿는 관료들의
해묵은 의식구조도 문제고, 자율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한곳으로 권한을
몰아준 정부조직개편도 방향감각이 없었다.

규제완화가 실효를 거둘수 있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원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