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보채가 고른 연극에 대하여 시비를 걸었다.

"하필이면 그런 골계극만 고를 게 뭐람.

할머니가 그런걸 좋아하니까 다들 그렇게 고르는 모양인데 좀 다른것도
고르고 그래야지"

보옥의 핀잔에 보채가 정색을 하고 변명하였다.

"도련님은 여러해동안 많은 연극을 구경하였다면서도 이 극이 얼마나
훌륭한가는 모르는 모양이군요.

이 극은 그 짜임새라든지 노래의 곡조와 가사가 기가 막히게 좋은
편이에요"

"그래? 난 누가 술에 취해 소란케 했다는등 하는 제목만 보고 이 연극도
떠들썩하기만 하고 내용은 별로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이 극이 얼마나 좋은가 좀더 설명해줄 테니 이리 가까이 와봐요"

가까이 갈필요도없이 서로 붙어 있다시피 하였지만 보채는 보옥을
더욱 끌어당겨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보채와 보옥의 그런 모습을 더이상 참고 보고 있지못하겠다는듯 대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뜨락을 빠져나갔다.

대옥은 시녀들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벽에 기대고 서서 흐느껴 울었다.

보옥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대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오늘같이 즐거운 날에 왜 우는 거야?"

"즐거운 날이라구요? 뭐가 즐겁죠?"

"보채 누이의 생일이잖아. 그것도 비녀를 꽂는 생일인데"

"그래서 전에 내 생일보다 더 풍성하게 차렸군요.

극단까지 데려와서 연극을 몇차례고 계속 공연하고 보옥 오빠는 나같은
것은 본체만체하고 보채 언리랑 붙어서 뭐라뭐라 귓속말을 주고 받기만
하고"

대옥은 서러움에 겨워 또 울먹었다.

"내가 언제 대옥을 본체만체했어? 오늘은 보채누이의 생일이니까 보채
누이에게 조금 신경을 써준거지.

대옥 누이도 오늘 만큼은 보채 누이를 축하해주는 마음을 가질수 없어?

내가 어떻게 해야 대옥 누이의 마음을 풀어줄수 있겠어?"

보옥의 그 말에 대옥이 울음을 그치고 보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보채 언니를 위해서 극단을 데려왔듯이 나를 위해서 극단을 따로
데려올수 있어요?

내가 보고싶은 연극 실컷 보게 말이에요"

"그야 어렵지 않지. 대옥 누이를 위해 내일 극단을 따로 불러보지 뭐"

보옥이 일단 대옥을 달래기 위하여 장담을 늘어놓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