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승려들이 입는 법복인 가사와 장삼은 불교의 전래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장삼은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에 전해졌을 당시 중국인들이 입던 옷이고
가사는 인도에서 석가와 그 제자들이 입던 옷이다.

애당초 석가는 가사만 걸쳤지만 중국에서는 중국옷위에 가사를 입었고
한국에서는 바지저고리 위에 장삼을 입고 그위에 다시 가사를 걸쳤으니
3국의 옷을 겹겹이 끼어 입은 꼴이다.

삼국시대중엽 이후부터 고려말까지 1,000여년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중국의 흑장삼과 붉은 가사를 받아들여 전통적인 우리 옷위에
착용했다.

대개 승복이 화려해 지고 위계에 따라 계층을 이루게 된것은 신라의
의상대사이후 승통이 확립되면서 부터였다는 것이 불교학계의 통설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승려의 위계에 따라 복식과 복색이 달랐다.

"고려도경"의 기록을 보면 국사는 자색의 중국식 치마위에 장삼과 비슷한
소매가 긴 웃옷을 입고 그위에 누비가사를 걸쳤다.

또 종아리에는 행전을 치고 방울달린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

대사는 국사와 같은 옷에 복전을 상징해 황색선을 두른 가사를 입었으며
대덕은 소매가 짧은 상의에다 노랑색 치마를 바쳐입고 그위에토황색 계통의
쾌자를 입었다.

사미바구는 처음 토황색 계통의 염색한 베옷을 입다가 높아지면 자색옷을
입고 더 높아지면 검정옷을 입었다.

조선시대의 승복도 가사 장삼이 여전히 착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시대와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종때부터 승려의복에 흑색사용을
금하는 바람에 오늘날처럼 회색 비슷한 거므스레한 시색이 사용됐다.

오늘날은 가사도 적색뿐만 아니라 갈색 황색이 함께 쓰이고 있다.

조계종이 승풍진작과 위계확립을 위해 의제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점차적으로 승복을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위계 성별 경력에 따라 승복의 색깔과 모양을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과거 조계종에서 불교의 현대화가 도마에 오를때마다 거론됐던 문제가
승복 문제였다.

한때는 승복도 일반인들처럼 평상복으로 하자는 과격한 의견도 나왔었다.

그것이 "위계에 따른 복식 차별화"정도로 뒷걸름질을 치듯한 느낌이다.

불교중흥은 제도를 고려때로 되돌려 놓는다고 해서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정작 승풍진작이나 위계확립은 250개의 비구계, 348개의 비구니계 등
계율을 더 잘 지키는 것이 아닐까.

석가의 비유처럼 계율은 꽃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묶어 놓은 "끈"과 같은
것이라니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