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숙환으로 별세한 동은 김용완옹은 우리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에 민간
경제계를 이끈 한국 근대경제사의 주역중 한 사람이다.

김명예회장은 지난 64년4월부터 66년4월까지 2년간 4.5대 전경련회장을
맡은데 이어 68년4월부터 77년4월까지 8년간 9.10.11.12대 회장에 올라
모두 10년간 "재계총리"직을 수행했다.

전경련회장 재임기간중 그는 한.일 한.중 민간합동경제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민간차원의 대외경협확대에 주력했으며 73년에는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모금운동을 통한 정치자금의 양성화를 추진하기도 했었다.

김명예회장은 1904년 충남 공주군 공주읍에서 예절과 관혼상제를 엄격히
지키는 예문가의 6남중 차남으로 태어나 일본 광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뒤
38년 경방의 전신인 경성방직에 지배인으로 입사했다.

경성방직은 그의 처남인 인촌 김성수와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가 일제때
주주공모방식으로 설립한 대표적 민족기업.

김명예회장은 경성방직에 들어간뒤 이 회사를 국내섬유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키웠으며 46년 제4대 대표이사사장으로 선임된 뒤엔 주식분산을
가속화하고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는등 경방을 국민기업으로 만드는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김명예회장은 섬유산업의 발전에도 심혈을 기울여 47년에는 대한방직협회를
설립했다.

70년 경방회장자리에 올랐으며 75년에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전경련명예회장과 경방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배
기업인들에게 과욕을 경계하고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도록 항상
조언해 왔다.

김명예회장은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프랑스와 일본정부로부터도 경제협력확대에 기여한 공로로 1등 국민훈장과
서보장을 수상했다.

< 이희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8일자).